[고광률의 영화읽기] “친구가 필요해요!”
[고광률의 영화읽기] “친구가 필요해요!”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람보 ②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8.03.14 05: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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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의 영화읽기]


람보: 순박한 슈퍼영웅
‘람보: First Blood’의 스토리 라인은 심플합니다. 본래 불세출의 영웅은 말이나 행동이 깔끔하지요.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과묵하고, 행동은 일타 쌍 피 수준을 넘어 일타 백 피 수준을 능가합니다. ‘람보’는 앞서 살펴본, ‘십보일살(十步一殺)’의 무공을 갖춘 《영웅(장예모 감독)》의 ‘무명’보다 강력한데, 무명이 집안 복수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것과 달리 람보는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싸웁니다. 동서양의 사고 차이를 느낄 수 있지요.

군용점퍼 차림의 람보가 도보로 시골마을의 외딴 외곽 주택에 당도합니다. 종전 7년 만에 옛 전우를 찾아서 왔는데, 전우는 암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고엽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람보는 아쉬움과 허탈함 속에 돌아서서 나옵니다. 그러고는 걸어서 시골마을 쪽으로 향합니다. 단지 초라한 행색을 못마땅하게 여긴 보안관이 불심검문을 하고 순찰차에 태워 마을의 경계 밖으로 쫓아냅니다. 이럴 경우, 조용히 마을을 떠나면 될 터인데 람보는 보안관의 조처에 반발하여 다시 마을로 재진입합니다. 이 재진입 시도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마을은 기득권의 세계 즉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일상(제도권)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람보는 이런 세계로의 ‘편입’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보안관이 다가와 저지하지요. 이번에는 몸수색을 하고 단검을 찾아내 문제 삼으며 압수합니다. 월남전에서 적들을 잡아 죽인, 자신과 국가와 체제를 지켜준 값진 무기가 ‘철없고 건방진’ 보안관에 의해 흉기로 둔갑을 합니다. 이 단검을 부랑자의 징표로 삼아 람보를 연행합니다.

대속자(代贖者) 람보
람보를 연행해 가둔 윌 티즐(브라이언 데니히) 보안관이 고문에 준하는 희롱과 가혹행위를 합니다. 무지한 공권력의 부당함과 잔혹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줍니다(물론 타락한 공권력이 있으나, 정당한 공권력이 압도적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디테일한 장치이지요. 할리우드 영화가 애국과 충성을 말할 때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물고문이 행해질 때는 핍박받는 예수, 세례 받는 예수 상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스스로 죽었으나, 람보는 속죄양 예수가 아니기에 보안관들을 응징하고 탈출합니다.

람보는 아날로그적 전사입니다. 그래서 차량이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탈주합니다. 그 어떠한 물질문명보다도 람보 자체가 강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장치인데, 결과적으로 람보를 영웅화하기 위함입니다. 오토바이를 탈취하여 마을 밖으로 도망가면 될 터인데, 람보는 그러지 않고 록키 산으로 들어갑니다. 미국민과 정부가 그를 버렸기에 그는 미국의 어머니 산이라고 일컫는 록키 산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품으로 간 것이지요.

람보는 자신을 추적하는,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보안관, 주방위군 들과 홀로 맞섭니다. 이들과 맞서는 람보의 무기는 단출하고도 조촐합니다. 달랑 단검 한 자루입니다. 이것도 무기라면, 질끈 동여맨 헤어밴드와 급조된 재킷이 있습니다. 이와 견줄 때 추적군의 숫자와 무기는 어마 무시합니다. 지상 공격을 위해 다량학살용 자동소총, 로켓포, 초음파 망원경으로 무장을 했고, 사냥개까지 데려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상 공격을 돕고,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헬기까지 띄웠습니다. 그러니까 무명의 십보일살과는 게임이 안 됩니다. 검객 무명은 진시황(영정) 하나 암살하면 끝이지만, 람보는 불특정 다수인 수백 명을 처치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것도 거의 맨손으로.

미국민의 유약한 마음이 적이다
신화적 영웅으로서의 람보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지상 추격을 따돌리자, 헬기를 통한 공중 추격을 받습니다. 헬기의 추격으로 외통수에 걸린 것같습니만, 람보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헬기를 작살냅니다. 저격용 총도 제거합니다. 자연 무기(돌)로 최첨단 화기와 헬기를 손봐준 것입니다. 이쯤 되면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떠오르지 않나요. 람보도 인간인지라, 부상을 당하지요. 그러자 단검 자루 끝에서 실을 꺼내 스스로 상처를 꿰맵니다.

람보는 이러고 있는데, 그를 쫓는 보안관들과 주방위군들은 멍청하고 한심하고 무능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마치 트레킹 나온 등산객모양 긴장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람보에게 얻어터진 보안관만이 악을 써댈 뿐 개념들이 없습니다. 얻어터진 보안관도 람보에 대한 무모하고 이유 없는 적개심만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니까 미국민들이 월남참전용사들에게 갖는 무모하고 이유 없는 적개심을 대변하는 것이지요.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인가요. 멍청한 가운데도 생각 있는 보안관이 있지요. ‘미치’ 라 불리는 보안관이 상관에게 이 추적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하지만, 안 받아들여집니다.

람보를 잡지 못한 추적군들이 결국은 사무엘 트로트먼 대령을 부릅니다. 이 자가 람보를 인간병기로 만든 ‘스승’입니다. 그린베레 대령이 람보의 전투력에 대해 읊조리는데, 신격화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너희 오합지졸들이 상대할 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때 멍청한 주방위군 대장이 명령을 어기고 람보가 숨어 있다고 판단한 폐광 입구에 바주카 포를 발사합니다. 기본 명령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당나라 군대 같은 추적군입니다. 포 한 방을 날려 폐광 입구를 부순 추격군들은 람보가 사망했을 것으로 단정하고 철수합니다. 그러나 묘한 미소를 띤 트로트먼 대령은 람보의 생존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어깨를 으쓱 해보입니다.
윌 티즐 보안관은 불필요할 정도로, 듣는 사람 짜증날 정도로 법과 제도를 들먹이며 왜 저런 놈(월남전 패전 용사)들을 가만 놔두는지 모르겠다며 악다구니를 써댑니다(그러니까 자신밖에 모르는 철부지 보수우파들을 싸잡아 비난하자는 것이지요).

윌 티즐 보안관: “내가 곧 법이다” 이 말은 ‘람보: First Blood’에 등장하는 명언 중 하나인데, 람보의 힘에 대항할 힘이 없으니 법으로 하자는 뜻으로 신에게 항변하는 말이지요. 예수 죽인 유대인들이 떠오르지 않습니까(이 명언에 대한 답을 이어질 2편에서 람보가 하는데, “내가 곧 전쟁이다”입니다). 참 무섭지요. 보안관이 말한 법이나, 람보가 말한 전쟁이나 우리 모두가 마땅히 무서워해야 할 말입니다.

패전의 이유를 바로 알라
람보를 ‘처치’했다고 생각하는 보안관과 대령이 술집에서 만납니다. 술집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비상상황 종료 및 일상성의 회복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폐광을 탈출한 람보는 철수 중인 군용차량을 탈취하여 마을로 2차 진입을 시도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데,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 대해 복수하려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람보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적들을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적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즉 악을 선으로는 갚는, 예수 닮은 람보입니다.

마을로 진입한 람보는 마을을 파괴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화된 문명과 테크널로지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M60과 폭약 등으로 차량, 주유소, 전기시설을 공격한 뒤, 술집, 보안관 사무실 등을 파괴합니다. ‘저들만의 평온한 일상’, 유흥, 법 등을 공격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월남전 패전에 따른 범국가적 무관심·무책임에 대한 총체적 경종인 것입니다. 그리고 타고 온 차량을 파괴하는 것은 절대 돌아가거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람보가 미국민 전체를 향해 미친 듯이 절규할 때, ‘가오’만 잡았지, 그래서 일만 키웠지, 한 것이 하나도 없는 보안관은 마을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제 목숨 하나 지키고자 람보의 미친 절규를 지켜 볼 뿐입니다.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이지요.

마침내 윌 티즐 보안관과 람보가 마주합니다. 람보가 방아쇠만 당기면 보안관은 땡입니다. 이래서는 람보가 살인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트로트먼 대령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살해를 저지하지요.

영웅적 애국자 람보를 받아들이라
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빠진 람보가 다시 미친 듯이 울부짖습니다. 멍청한 눈빛, 순박한 표정, 어눌한 말투로 미국민과 세상을 향해 절규하지요.

“친구가 필요해요!”

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소설집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오래된 뿔’ 등을 발표하였다. 수년 간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람보는 이 말을 하려고 스크린에서 90여 분 내내 길길이 날뛰면서 ‘난리 브루스’를 춘 것입니다. 이 말, 이 절규, 즉 능력 있는 영웅, 초인적 힘을 지녔으나, 억울한 핍박을 당하고도 끝끝내 정의를 지켜 줄 아는 이 인간적 영웅이 날린 이 결정적 멘트는, 월남전 패전의 책임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에게 있으니, 죽을 둥 살 둥 적들과 싸운 죄밖에 없는 나에게 더 이상 묻지 마. 그러니 이제 나(월남전 참전 용사 및 전쟁을 주도한 세력들)를 너희들의 친구로 받아줘.

마침내  트로트먼 대령이 람보의 손을 잡습니다. 트로트먼 대령은 곧 제도권을 상징하지요. 부상당한 멍청한 보안관은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오르고 람보는 수갑을 차고 연행됩니다. 감옥도 재도권이고, 머지않아 출소하겠지요. 맞습니다. 출소해서 2편을 찍는데, 국가주의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무척 재밌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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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2018-03-14 07:44:30
성실함이 느껴지는 글 입니다 ^^

지나가다 2018-03-14 07:39:20
람보가 언제쩍 영화래요. .여기는 지면이 남아도나부네요.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