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숨] 길을 걸으면서 기억하라
[세상의 숨] 길을 걸으면서 기억하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 세상의 숨 ③ 팽목바람길을 만드는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3.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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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올레길을 걷고, 명소로 알려진 둘레길을 걷는다. 멀리 산티아고의 순례길도 걷는다. 혼자 걷는 이가 있고 둘이 동행을 하기도 하고,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부터 길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특징있는 길에 이름을 붙이거나 테마길을 조성하는 자치단체와 기관들도 늘어났다. 이제는 하나의 상품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길위에 서면 마음은 일상의 복잡함에서 벗어난다. 저마다 길을 떠나는 이유는 있다. 길에서 찾아야 할 것과 생각할 것이 많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기억을 만나는 자리라면, 그 길은 더욱 숙연해질 것이다.

길에 서면 만나는 것들
“낮지만 날카로운 파도의 바다. 구름이 많지만 왠지 모르게 환한 하늘. 바다와 하늘 사이에 자리잡은 산, 내 몸을 감싸는 듯한 나무. 예쁘다. 날씨는 추운데 따듯했다. 경치가 탁 트였는데 마음이 탁 트인 느낌이다. 구름이 많아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는 덕분에 흐릿하지만 넓은 수평선이 보인다. ‘편안함’이지만 길이 편안한 것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진도가 이렇게 예쁘구나. 딱 한사람이 걸을 수 있는 넓이의 길이라서 새치기 할 수 없다. 같이 가야한다. 한 사람이 신발끈을 묶어도 같이 기다리고, 한 사람이 가시나무를 베어도 같이 기다린다. 그렇게 천천히 산을 올라갔다. 힘든 줄 모르고 갔다. 힘들지 않았다. 동백꽃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며 피고 있었고, 다른 나무들은 이제 꽃 봉우리를 뾰족이 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팽목바람길을 걸은 한 중학생의 글이다. 팽목바람길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사람들이다. 물론 현지의 진도사람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작가연대 인터넷카페에 가면 지난해부터 시작한 팽목바람길 조성과 관련한 내용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팽목항 방파제 벽에는 손바닥만한 타일 4천여장으로 만든 ‘세월호 기억의 벽’이 있다. 이 기억의 벽을 만든 이들은 동화와 동시 등 어린이와 청소년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에는 세월호대책실천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이 대책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도에서 길을 걷고 있다. 출발지는 팽목항이다.

“팽목바람길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아이들과 사람들이 올라온 첫 번째 땅이에요. 우리는 걸어서 이 곳을 지키려고 합니다. 분향소와 안치실이 있던 자리의 배후지 개발로 인해 상처의 기억이 사라질 위기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누군가 기억하길 바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을 들렀다가 참배만 하고 돌아가지 말고 팽목바람길을 걸었다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하은 작가는 팽목바람길 조성의 의미를 이렇게 전해주었다. 생생한 현장을 통해 우리는 기억의 실체에 더욱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이 상처가 됐든 분노가 됐든, 그 출발은 기억에서 이뤄진다.

팽목바람길은 기억의 길이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와 진도사람들이 조성하고 있는 ‘팽목바람길’의 구체적인 코스는  팽목항 ‘세월호 기억의 벽’에서 출발해, 팽목마을→마사방조제→해안길→다신기미→잔등너머→마사리→ 간척지들 갈대밭길→ 팽목항으로 돌아오는 길로, 총 12km 남짓 되는 거리이다.

이 길은 추모객들이 걷고 가기에 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요 코스는 바다를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걷다가 눈을 돌리면 팽목항의 기다림의 등대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작가연대 사람들은 팽목바람길을 걸으며 톱이나 낫으로 길을 걷는데 방해되는 최소한
의 것들을 정리 했다. 길을 안내하는 리본도 달았다. 이들은 다음 달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되는 즈음에 팽목바람길 공식 조성을 알리려고 한다.

팽목바람길은 잊혀져가는 팽목항을 지키기 위해 진도사람들과 '세월호 기억의 벽'을 만든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억과 상생의 도보여행길이다. 현재 작가연대는 길을 조성하기 위해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는데 그 이름을 길동무라고 명명했다. 후원금은 이정표와 길을 안내하는 지도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길동무는 단순하게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무가 아니라 기억을 나누고 참사의 고통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 십시일반의 마음을 보탠다면 길을 걸으면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과 고통의 상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연대의 정재은 작가는 팽목바람길을 탐사하고 사전에 돌아본 느낌을 이렇게 전한다.

“다소 험한 산길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는 길을 만나고 또 밭길을 지나는 등 길의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서 걷기에 전혀 지루함이 없어요. 어쩌면 그 길 자체가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길 만들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유하정 작가는 그것은 기억의 길이라고 말한다.

“길이 아닌 곳도 자주 다니다 보면 길이 되잖아요. 팽목바람길도 일부구간은 자주 다니다 보니까 길이 됐어요. 팽목의 바람을 맞으면서 캄캄한 바다에서 숨을 거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팽목바람길은 기억의 길이 되지 않을까요”

망각이 아니라 생생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충격적인 죽음이 남긴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총체적 부실이 낳은 사회적 죽음이기 때문이다.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공허하게 들려줄게 아니라, 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체감하라는 뜻에서 그들은 길을 만들고 길 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팽목바람길에 서는 순간, 내가 걷는 인생의 길이 중첩되면서 삶의 행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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