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흑산도④] 정약전, 16년 유배생활 몸부림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흑산도④] 정약전, 16년 유배생활 몸부림
복성재에 얽힌 슬픈 이야기
  •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 승인 2018.03.18 13: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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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이 흑산도에서 기거했던 복성재(復性齋). 서학을 버리고 성리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복성재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사촌서당(沙邨書堂), 일반적으로 마을의 의미를 담고 있는 ‘村’ 대신 ‘邨’을 선택한 정약용의 어휘력이 흥미롭다.
정약전의 호를 딴 손암정(巽菴亭) 전경.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자전거를 끌고 유배문화공원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원이 민가와 뒤섞여 마치 달동네 뒷골목을 답사하는 듯 새로운 길목에 들어설 때마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일주로를 도는 차량과 관광버스가 유배문화공원에 많이 정차하는 걸로 봐선 여행객들의 관심이 적잖은 듯하다.

정약전(丁若銓·1758-1816)이 흑산도에 기거했던 흔적은 손암정(巽菴亭), 사촌서당(沙邨書堂),  복성재(復性齋) 등의 현판에서 찾을 수 있다. 호가 손암(巽菴)이므로 유배문화공원에 있는 ‘손암정’은 금방 이해가 되지만 사촌서당과 복성재는 낯설다.

1801년(순조1) 신유사옥에 동생 정약용(1762-1836·전남 강진 유배)과 함께 연루돼 흑산도로 쫓겨난 정약전은 1807년 이웃마을 모래미(沙里)로 이사해 거처를 복성재라 불렀다. 복성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은 모래가 많은 마을 특징을 살려 사촌서당으로 이름 붙였다.

정약전은 원래 손암이라는 호 이외에도 연경재(硏經齋)가 있었는데 흑산도에선 복성재로 명명한 것이 흥미롭다. 복성(復性)이란 글자 그대로 인간성 회복이며 자기 수양이다. 신안군이 유배문화공원 입구에 세운 사촌서당(복성재)에 대한 해설안내판을 보면 복성재는 ‘정약전이 서학(西學·서양의 학문)을 버리고 성리학(性理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고 적고 있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조선의 근본 이념인 유교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흑산도를 벗어나고픈 처절한 몸부림
정약전의 유배 죄목은 ‘사학죄인’이다. 사학(邪學)은 사악한 학문이란 뜻이다. 주자학에 위배되는 학문이며 조선 중기에는 양명학, 후기에는 천주교나 동학을 말한다. 안내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천주교를 믿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사면을 간절히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복성재라는 현판까지 내걸고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학동들을 가르치는 자신을 조정이 헤아려 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주변과의 어쩔 수 없는 인맥으로 서양학문과 천주교를 접했지만 조정의 탄압이 심할 즈음 천주교를 멀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산어보를 남기고 류큐(오키나와(沖繩)의 옛 지명)와 필리핀까지 표류했다가 간신히 돌아온 문순득의 이야기를 ‘표해시말’(漂海始末)이라는 책으로 써낸 의욕을 보면 서학을 완전히 끊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면을 받기 위해 조정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학구열은 놓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해서든 사면을 받으려 한 이유는 정치 재개보다는 흑산도 생활의 혹독함과 뼈를 깎는 듯한 고독 때문으로 보인다. 동생 다산은 육지나 다름없는 강진에서 가족친지들의 직간접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은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는 최고 원악지(遠惡地)에 갇혔다는데 정신적 압박을 심하게 받은 듯하다. 흑산도에서 현지인과 가정을 꾸렸지만 육지에서 가족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생을 마치길 원했을 것이다.

정약전의 업적을 기리는 유배문학공원내 자산어보원 안내판.
흑산도 유배문화의 역사와 업적, 부작용 등을 기록한 안내판.
정약전 최익현 등 흑산도로 유배를 온 주요 역사인물의 기록을 기념비로 세웠다.
마을 입구의 사촌서당(복성재) 설명문을 자전거여행객이 읽고 있다.
흑산도역사문화를 답사하기 위해 대전에서 온 자전거동호인들. 뒤로 보이는 산길을 넘으면 심리마을회관이 나온다.

유배지에서도 수준 높은 문필력 지킨 선비
유배생활 10년이 훌쩍 지날 무렵 다산이 유배가 풀릴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육지와 가까운 우이도에서 동생을 만나길 원했다. 1814년 약전은 가족을 데리고 흑산도를 탈출했으나 마을 사람에게 붙잡혀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마을사람들을 설득해 우이도로 나갈 수 있었지만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1년 뒤 유배생활 16년만에 병사하고 말았다. 다산은 형이 죽은 2년 뒤 유배지 강진에서 풀려났다.

요즘 사이버상의 흑산도 여행기 중 사촌서당(沙邨書堂)에 대한 내용을 보면 ‘사촌’의 한문을 ‘沙村’으로 표기해 아쉽다. 흑산도 사촌서당의 현판은 아무리 보아도 ‘沙邨’인데 대부분 ‘沙村’으로 쓴다. 심지어 ‘邨’을 ‘둔’으로 오역해 ‘사둔서당’으로 읽기도 한다. ‘邨’은 ‘村’과 훈음이 같은 ‘마을 촌’이다. 다만 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다산이 써준 대로 한자와 한글표기는 ‘村’이 아닌 ‘沙邨書堂(사촌서당)’으로 쓰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黑山(흑산)’ 대신 ‘玆山(자산 또는 현산)’으로 표현하고 ‘村’(촌) 대신 ‘邨’(촌)을 쓰는 당시 선비들의 수사법은 오늘날 좀 더 정제되고 인문학적 복선을 담으려는 문필가의 레토릭과 다르지 않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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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3-31 12:42:36
자전거 여행의 참 맛을 알듯할거 같네요. 글만 봐도 함 해보고 싶은. ^^

kusenb 2018-03-19 08:44:06
글과 사진 모두 좋은 여행기네요~
흑산도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진교영 2018-03-18 18:10:22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모바일로 봐도 사진이 너무좋습니다
흑산도는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여행기 연재가 흑산도가게되면 많은 도움이 될것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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