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에 관한 진실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진보논객 진중권 동양대학 교수가 ‘귀류법적 논리’ 전개를 통해, 적나라하고도 거침 없이 날 선 비판을 하고 나섰다.
귀류법이란,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려 할 때 그 명제의 결론을 부정함으로써 결국 그 명제가 참일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말한다.
진 교수는 미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사건을 매우 분석적으로 접근, 다각도로 파헤친 주장을 기고문의 형태로 <프레시안>을 통해 밝혔다.
진 교수는 기고문에서 “아무리 따져봐도 피해 여성의 폭로가 거짓이나 공작일 수 없다”며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쪽은 정 전 의원 측이라 보는 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냈다.
그는 특히 “하나의 거짓말을 하게 되면, 결국 그걸 유지하기 위해 세계 전체를 날조해야 한다”며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진정으로 치명적인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그릇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가 이제라도 올바른 길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자신의 주장을 끝맺었다.
다음은 진 교수가 기고한 40여 쪽에 이르는 장문의 주장 가운데 주요 대목을 간추렸다.
참고로, 이에 대한 정 전 의원의 반론이 있을 경우 반영할 예정이다.
◆피해여성의 폭로가 일단 거짓이라고 가정하고, 그로부터 어떤 사태가 귀결되는지 보는 거다. 일단 그녀의 폭로가 거짓이라면, 정봉주는 먼저 왜 그녀가 거짓말을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봉주와 김어준은 피해여성의 폭로를 각각 허위, 공작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왜 거짓 폭로를 했을까? 대체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이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함으로써 얻을 게 뭐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시장선거를 좌초시키는 게 피해여성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란 딱 하나, 그녀가 실제로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뿐이다. 오직 그 경우에만 여성은 성추행 가해자로서 그의 공직출마를 막아야 할 구체적 동기를 갖게 된다.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에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막아야 할 '내적' 동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동기는 '외적'인 것, 즉 밖에서 주어진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누군가가 그들에게 금전적, 혹은 그 밖의 대가를 주기로 약속하고 거짓폭로와 허위보도를 하도록 뒤에서 사주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주를 누가 했을까?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자가 정봉주를 낙마시키려 여성과 언론을 사주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안철수가 정봉주를 미리 견제하기 위해 여성과 언론에 거짓폭로를 하도록 사주했다? 이 가정도 우습기 짝이 없다. ◆결국 이렇게 따져 보면, 대한민국에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할’ 정치적 주체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왜 그는 누군가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하려 한다는 망상에 빠졌을까? 정말로 그는 자신을 낙마시키려 공작을 꾸미는 세력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걸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 않는데, 말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정봉주의 말대로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이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폭로를 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봉주의 주장이 말이 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괴한 가정을 해야 한다. 즉, 피해여성이 7년 전에 먼 훗날 정봉주가 사면을 받고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을 미리 예상하여, 남자친구에게 있지도 않은 성추행 사실을 기록한 허위메일을 보내놓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있지도 않은 성추행 사실에 관한 허위고백을 뿌려놓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이 놀라운 예언의 은사를 가진 분은 오직 두 분, 허경영과 김어준 뿐이다.) ◆한 정치인이 자신을 존경하는 한 여대생을 호텔 카페의 룸으로 불러내 키스를 하려 했다. 정치적 존경을 이성간 애정으로 착각하거나, 혹은 강제로 전환하려 드는 것.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 상처에 아파하던 여성이 확산하는 '미투'에 용기를 얻어, 7년 만에 성추행 피해사실을 고백했다. 여기에 이상하거나 부조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고로 거짓말 하는 쪽은 정봉주 측이라 보는 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이렇게 큰 그림을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하지만 정봉주는 이 큰 그림을 흐려 버리려 한다. 사소한 디테일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사람들의 논리적 주의력을 흩트려놓는 것이다. 사실 이건 뭐 새로운 술수도 아니고, 옛날부터 길바닥 야바위꾼들이 즐겨 사용해 온 고전적 수법이다. 박보장기 판에서 야바위꾼들은 그 현란한 혀로 행인들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유도한다. ◆정봉주가 “내가 렉싱턴 호텔에서 키스를 하려 한 게 몇 시 몇 분이었는지 특정하라”고 바람을 잡을 때, 그 판에 따라 들어갈 필요는 없다. 왜? 성추행이 일어난 시간을 특정하지 못한다고 있었던 성추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그가 제안하는 '초치기', '분치기'의 패싸움에 들어갈 필요 없다. 패싸움의 승부가 갈리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승부가 안 날 수도 있다. 상황을 그렇게 논리적 교착상태로 가져가는 게 정봉주의 전략이고, 그 전략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귀퉁이의 패가 아니라 중앙의 대마. ◆그에게 큰 물음을 던지자.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게 자신의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공작이란다. 그렇다면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은 '왜' 그의 출마를 방해하려 하는가?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나 '동기'가 무엇인가? 진실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대답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내 상상력의 한계일까? 아니면 그의 논리의 한계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