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흑산도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향에 아쉬움을 달래고…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흑산도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향에 아쉬움을 달래고…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흑산도 ⑤ <마지막> 흑산도 홍어가 미쉐린 가이드에서 빠진 이유
  • 김형규
  • 승인 2018.03.30 14:0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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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유배문화공원내 자산어보원 전경.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24㎞의 흑산도 일주 라이딩을 끝내고 일행은 미리 잡은 숙소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땀내 나는 라이딩복을 세탁해 바닷바람이 잘 통하는 빨랫줄에 널었다. 이제 할 일은 먹는 거다. 원정 라이딩의 묘미는 재미나게 자전거를 타고 맛난 음식을 저렴하게 먹는 데 있다.

흑산도하면 홍어다. 생홍어회와 코를 찌르는 홍어탕이 몸속에 흡수되자 금세 피로가 풀렸다. 흑산도 명물 삭힌 홍어는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곳에서 자연스레 터득한 발효저장식품이다. 더욱이 간고등어와 젓갈과 달리 염장을 하지 않는 희귀 발효식품이다. 자체 암모니아에 의한 알칼리성 발효라는 점이 사람의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만일 흑산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서해 도서가 일본과 동중국해를 연결하는 중계무역 역할을 했다면 홍어회는 일찌감치 세계적인 음식으로 각광받았을 것이다. 일본과 마카오에서 유명한 커리, 돈까스, 나가사키 짬뽕 등의 퓨전음식은 오래전부터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토착화됐다.

최근 마카오 여행 중 현지 해사(海事)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전시물 가운데 1973년 중국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시(泉州市) 앞바다에서 발견된 옛날 상선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13세기 후반 송대(宋代)의 것으로 밝혀진 이 배는 길이 34m, 폭 11m, 무게 390t 규모다. 앞서 소개한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의 보물선 크기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신안앞바다 보물선의 침몰 시기는 취안저우시의 것보다 1세기 정도 늦은 원나라 시대(고려 충숙왕 10년)이다.

흑산도로 쫓겨온 유배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기념비.
유네스코 신안다도해 생물권보전지역을 알리는 표지판.

마카오에서 만난 신안 앞바다 보물선
취안저우시 상선에서는 티모르와 자바, 베트남에서 수입한 백단, 침향과 인도네시아산 후추, 남아시아산 후추열매, 수은의 중요한 광석이자 안료인 진사, 중국엽전, 도자기, 과일, 동물뼈, 항해용 금속도구 등이 발굴됐다. 이 가운데 선원이 즐긴 것으로 추정되는 체스게임의 피스 몇점이 흥미롭다.

남중국해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송대와 원나라, 명대에 걸쳐 활발한 해상교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체스가 발견됐다는 건 동남아를 거쳐 인도와 아랍까지도 교역을 했다는 의미다. 동쪽으로는 신안앞바다 보물선 유물에서 보듯 일본까지도 상선이 오갔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은 외세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다르다. 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탈을 겪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중국(명나라)을 통해서만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을 뿐 일본을 미개인 취급하고 공도(空島)정책에서 보듯 해양진출을 꺼렸다.

정약전 못지 않게 면암 최익현(1833-1906)도 평생 유배의 고초를 겪었다. 면암은 1873년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군부(君父)를 이간했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됐다가 2년 뒤 풀려났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극렬 반대한 그는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서 개항을 해서는 안 되는 5개 항을 담은 '병자척화소'(丙子斥和疏)를 올렸다.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흑산도로 끌려가 4년간 위리안치됐다.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면암은 아예 무장항일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의병을 모집하고 전라도에 진영을 구축했으나 이듬해 6월 진압군에 체포됐다. 일본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다가 일본 쓰시마로 압송·감금돼 이듬해 병사했다.

생홍어회와 홍어무침.
삭힌 홍어로 끓인 홍어탕.

일본은 어떻게 강대국이 됐나
면암은 여느 유학자와는 달리 항일무장투쟁을 몸소 실행했다는 점에서 당시 민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항일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올곧은 항일 투쟁정신에도 불구하고 개화기에 대처하는 유연함보다는 지나치게 위정척사에 매몰됐다는 점은 논란으로 남는다.

외세를 배척한 건 조선조정의 전반적인 기류였다. 조선은 1627년과 1653년 네덜란드인 박연과 하멜이 각각 제주도에 표착해 교류의 기회를 잡았지만 외면했다. 조정은 이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잡아두는 데만 신경을 썼다.

박연은 생몰시점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이슬처럼 사라졌고 하멜은 모진 고초를 겪다 겨우 탈출해 조선에서의 불행했던 생활을 기록으로 남겼다.

정약전은 류큐(오키나와(沖繩)의 옛 지명)와 필리핀까지 표류했다가 천신만고 끝에 생환한 신안군 홍어 거래상 문순득의 이야기를 ‘표해시말’(漂海始末)이라는 책으로 남겼지만 흑산도 유배시기라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일본은 하멜과 박연의 제주 표착보다 1세기쯤 앞선 1543년 규슈 남단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 상선이 표착했다. 이 상선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인은 일본에 조총 기술을 전수했다. 일본은 낯선 포르투갈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돌려보내 이후 서양과의 교류에 물꼬를 텄다. 이전부터 계속된 남중국과의 무역이 일본의 내성을 키웠을 것이다.

일본도 조선처럼 자국 문화와 풍속을 지키기 위해 쇄국령을 발동한 적이 있다. 사학 전파와 상공업의 과도한 팽창을 우려해 1635년 제한된 지역에서만 외국과의 교류를 허락했다. 폐쇄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미 교류를 통해 상공업과 과학기술의 노하우를 상당 수준 끌어올린 상태였다.

흑산도라이딩을 마친 자전거가 숙소 마당에 가득하다.
숙소 앞마당 빨랫줄에서 해풍에 속성 건조되고 있는 자전거 옷.
마카오 해사박물관에 전시된 송대(宋代) 상선 모형. 약 750년 전 침몰한 배로 신안앞바다 보물선과 크기가 거의 같다.

1853년 미국 페리함대가 증기선을 몰고 도쿄 외항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하는 사건은 일본의 운명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검은색 증기선을 처음 본 일본인들은 조총을 처음 봤을 때처럼 두려움과 함께 서구 문물에 경외심을 가졌다. 일본은 1850년 터진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증기선 몇 척에 청나라 정크선 수백 척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쇄국령 해제에 대한 찬반양론을 수습하고 천황중심의 입헌군주제를 확립한 일본은 곧바로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다. 일본의 국력신장에 날개를 다는 순간이었다.

일본이 이 시기에 경제와 문예분야에서 강력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장시간 지속된 정국안정이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잦은 외세의 침략과 당파싸움으로 민생이 극도로 불안해 민간 경제는 물론 문화발전에 몰두하거나 육성할 겨를이 없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고 군부 이데올로기 교육관이 창의력교육으로 전환돼 결실을 맺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우리나라도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가 우리나라 각 분야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때쯤이면 더 놀라운 일이 자주 벌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항구적인 평화가 유지돼야 함은 물론이다.<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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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k 2018-04-03 18:16:51
라이딩 기록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를 접목시켜주셔서 더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한입만 2018-04-02 14:53:56
맛과 역사, 두바퀴로 돌아보는 여행.
재미지게 의미깊게 읽고 갑니다.^^
김 라이더 라이터 홧팅!!!

kusenb 2018-04-02 14:34:34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홍어 특유의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려면
저는 아직 더 수련이 필요한가 봅니다 ㅎ

벚꽃 2018-04-01 13:10:05
잘 읽고 갑니다. 역사와 맛이 어우러진 글.. 보기만해도 부럽습니다!! 우리도 조금 일찍 개방을 했더라면 .. 또 역사가 달라졌을거라 생각하니 아쉽기도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

진교영 2018-03-31 15:11:28
홍어회 무침 탕 요렇게 세트로 증말 환상적이지요
빨래줄에 널린 해풍에 말리는 사진이 인상적이네요....
우리도 조선후기 문물개방에 적극적이었다면 지금쯤 세계적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