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친구 가족의 행복함을 ‘축복’
[변상섭의 그림읽기] 친구 가족의 행복함을 ‘축복’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3.3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 시인의 가족. 1955년. 구상문학관

K시인의 가족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이중섭(1916-1956) 화백 하면 으레 소 그림을 떠올린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까지 역동적 이미지의 황소와 흰소가 각인된 탓일 게다.

하지만 이중섭은 가족과 사랑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훨씬 많이 남겼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그림 말이다.

‘K시인의 가족(1955)’도 그중의 하나다. 죽기 1년 전 절친인 구상 시인에게 ‘가족사진’이라며 그려준 그림이다. 이중섭은 1954년부터 1년 반 정도 왜관의 구 시인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보낸 후 허전함에 지쳐 있을 때 구 시인이 아들에게 세발자전거를 사다 주던 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고개를 돌려 아빠인 구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행복 그 자체다. 손을 감싸 잡고 이를 지켜보는 구 시인의 아내와 딸의 얼굴에도 넉넉한 미소가 번진다. 그림의 시간적 배경이 6·25 전쟁 직후인데 곤궁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이를 지켜보는 이중섭의 표정은 대조적이다. 얼굴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하다. 초점 없이 휑한 눈빛도 그렇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꼿꼿한 자세에 어울리지 않게 팔은 힘이 없어 보인다.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의 환영이 세발자전거를 타는 친구의 아들 머리 위로 아른거리는 것은 아닌지 영 부자연스럽다. 비록 자신의 처지는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지는 못하지만 행복감을 만끽하는 친구의 가족을 향한 축복의 마음은 넉넉하다.

화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화폭 전체에서 행복감이 묻어난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행복한 친구 가족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붓을 놀렸을 것이다. 그림을 곱씹어 뜯어볼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