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어떤 덕담(德談)
[시민기자의 눈] 어떤 덕담(德談)
  • 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승인 2018.04.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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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그해 겨울은 유독 그렇게 더 추웠다.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긴 했으나 암담한 집안형편은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죄인의 거처인 양 인적마저 끊긴 상태였다. 홀아버지께선 이 아들이 없는 동안 과연 어찌 먹고 사셨던가…

소위 ‘단기사병’으로도 회자됐던 방위병 생활은 숙부님 댁에서 먹고 자며 ‘출퇴근’했다. 따라서 겨우 2년 여 사이에 우리 집의 가세가 그처럼 몰락했음을 발견한 건 새삼 충격이었다.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나의 입대 전부터 돈을 벌 수 없었던 아버지셨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렇지 쌀독에 쌀 대신 굶어죽은 쥐만 들어있는 형국이라니! 급한 마음에 친구를 찾아 이튿날부터 함께 공사장에 나갔다. 거기서 일하고 받은 일당으로 쌀과 연탄부터 들였다. 이후 어찌어찌 취업한 직장은 영업직이었다.

학력이라곤 달랑 국졸(초졸)뿐이었기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으로 매진했다. 그야말로 ‘귀신 잡는 방위정신’으로! 덕분에 입사한 지 불과 2년도 안 돼 과장급 전국 최연소 사업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사귀던 처자와 결혼을 한 건 그 즈음이었다.

회사의 사장님께 주례를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허나 아버지께선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상태였다. 부모님 없는 휑뎅그렁한 결혼식을 치르면서 내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넉넉한 예식을 치러 주리라 다짐했다. 세월은 여류하여 아들과 딸을 슬하에 두었다.

명문 S대 출신의 딸과는 별도로 아들은 지방대학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 대기업에 합격했다. 서울로 유학 간 딸에겐 대학원 졸업 때까지 수 년 동안 생활비를 보내주느라 경비원의 박봉으로 많이 힘들었다.

반면 대학 재학 시절부터 택배 알바 등 가시밭길을 걸었던 아들은 스스로의 깜냥으로 졸업까지 마쳤다. 그 아들이 얼마 전 과장으로 승진했다. 조만간 결혼하는 아들이 며칠 전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지인들에게 그 청첩장을 보내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얼추 40년에 가까운 세월의 간극이 있기는 하지만 나와 아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과장(課長) 시절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니 부자유동(父子有同)이 아닐까.

물론 단순비교는 어리석다. 나는 고작 중소기업의 과장을 했고 그 기간 또한 너무도 짧았으니까(회사는 부도를 맞아 얼마 뒤 좌초됐다). 반면 아들은 자타공인 막강 글로벌기업의 ‘과장님’인 까닭에.

따라서 모바일 청첩장을 받은 지인이 답신하길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며 아들을 칭찬한 건 시의적절한 표현이어서 마음이 흡족으로 흘러넘쳤던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어떤 교조(敎條)가 있다. 그건 바로 가난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결혼하는 아들이 행복과 풍요로만 잘 살길 소망한다. 효도라는 건 별 것 없다. 결혼하여 불화 없이 잘 사는 것, 그게 바로 효도다. 끝으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 덕담(德談)을 선물로 건네고자 한다. “남편은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아내는 남편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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