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익은 과실의 은은한 향 '부케'를 아시나요?
농익은 과실의 은은한 향 '부케'를 아시나요?
최해욱의 '와인 이야기'
  • 최해욱
  • 승인 2012.07.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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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과실의 아로마(Arôme:향기)에 살며시 올라오는 후추, 버섯 향”, “싸구려가 아닌 고급 와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은은한 커피, 아몬드의 향취”….
TV 드라마 속에서 꽃미남 꽃미녀 배우들이 쏟아내는 멋들어진 대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와인을 소개하는 전문적인 글이나 칼럼에서도 스스럼없이 튀어나오는 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 ‘아~ 와인, 너는 정녕 어느 별에서 떨어진 신들의 눈물이란 말이냐?’

분명히 와인은 포도로만 발효되어 만들어진 음료다. 그런데 어째서 포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성분들의 향취가 느껴진다고 얘기하는 것일까. 혹시 내가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일부러 부풀리기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 먼 프랑스 샤또(Chateau·자체 포도농장을 가진 와인공장) 주인들이 몰래 포도주를 담글 때 커피나 후춧가루 등을 뿌리는 것일까? 와인을 별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참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은 질문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그 이질적(?)인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 일까?
와인은 여타의 알코올을 함유한 음료와는 달리 그 내부에 생화학 작용을 할 수 있는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는 유기생명들의 집합체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와인이 다른 주류와 달리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할 수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예고된, 혹은 예기치 못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김치나 막걸리가 전 세계적으로 맛과 영양학적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주목을 받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이렇게 숙성된 와인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향기를 ‘부케(Bouquet)’라고 한다. ‘어린’ 와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포도나 와인 내의 여러 가지 향기를 뿜어내는 화학물질들이 오크통이나 병속에서 오랜 숙성기간을 거치며 주로 미세한 산화로 인하여 변형이 되어 생기는 향기를 지칭한다.
따라서 앞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 부케는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열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커피라던가 아몬드, 초콜릿, 트뤼프(Truffe·프랑스 요리의 재료가 되는 고급버섯)향과 같은 것이 대부분으로, 이런 향기를 지닌 와인은 일반적으로 오랜 숙성을 거친 고급와인이라고 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숙성기간 중 생성된 모든 향기를 부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미각에 불쾌감을 주거나 와인의 밸런스를 깨뜨린다고 여겨지는 향들은 여지없이 와인의 결점으로 불리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부쇼네(Goût de bouchon·코르크에 붙은 화학물질이 미생물의 작용으로 변해 생성되는 역한 곰팡이, 이끼냄새), 잔디향, 썩은 양배추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모든 와인들이 부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아무 와인이나 창고에 오래 묵혀두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부케를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장기 숙성(최소 몇 년에서 부터 몇 십 년 까지)을 견딜 수 있는 잠재력(Potentiel)을 가진 와인들만이 숙성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겪으면서 부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와인들이 바로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그랑크뤼(Grand cru·명산품)들로 바로 이들을 얻기 위해, 이들만이 가지는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 숙성을 견뎌 낼만한 잠재력이 없는 와인을 그냥 묵혀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럴 경우 색깔을 구성하는 적색의 폴리페놀 성분이 안정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침전되기 때문에 와인이 벽돌 색을 띠며 향기가 다 날아가버린 밋밋한 맛(éventé)의 와인이 되버리고 만다. 쉽게 얘기하자면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남쪽의 론주에 있는 보졸레 지방에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바로 파는 햇 포도주) 같이 양조 후 단기간 내에 마시기 위한 와인들을 장기보관 하려다간 김빠진 붉은색의 액체를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장기간을 숙성시켜야 얻을 수 있는 고급와인의 상징인 부케를 얻기 위해 많은 샤또들은 와인을 양조한 후 일정 기간 동안을 의무적으로 오크 나 병 속에서 숙성을 시킨 후 시중으로 출하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연스레 오랜 세월을 지내며 얻어온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와인이더라도 자연스런 부케가 생성될 만큼의 세월을 견겨온 녀석이라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테고 더군다나 희소성이 있는 빈티지(Vintage·와인의 생산년도)에 유명한 생산자의 와인이라면 수 십, 수백만 원의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케’란 단어는 우리에게는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쥐고 있는 작은 꽃다발을 지칭하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쩌면 와인에서의 부케란 오랜 세월 동안 숙성되며 좋은 향기만을 만들어 나가듯, 결혼식장에서의 부케란 이 꽃다발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향기처럼 각기 다른 남성과 여성이 부부가 되어 숭고한 사랑과 ‘인내(Potentiel)’로 평생 동안 고난을 헤쳐가면서 함께 숙성되어 만들어내는 인생의 은은한 향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와인 구매 팁>
 
장기보관을 위해 구매하는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이 많고 오크숙성을 거친 것이 좋다. 대체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마을단위급(뽀이약, 마고 생떼스테프, 뽀므롤 등)이나 부르고뉴 지방의 그랑크뤼급(샹베르탱, 뮤지니 등) 들이 좋으며, 이들은 오래 숙성시킬수록 과실향은 줄어들지만 이외의 복합적(Complex)인 부케를 느낄 수 있어 주로 안정된 분위기에서 식사와 함께 마신다.
반면 쉽게 마실 수 있는 가벼운 와인들을 원한다면 과실향이 주된 신대륙(칠레, 호주, 미국 등) 와인이나 보졸레누보 등을 선택하면 부담도 덜고 격식 없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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