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야하지 않은 야함이 주는 카타르시스
[변상섭의 그림읽기] 야하지 않은 야함이 주는 카타르시스
임군홍 작 ‘모델’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4.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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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군홍 작. 19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민망할 정도로 대담한 포즈다. 1940년대 신여성 이미지로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야하다. 시선을 뒤로 돌렸기에 망정이지 웬만큼 낯 두꺼운 남자도 정면에서 바로 보기가 쑥스러운 그림이다.


임군홍(1912-1979)의 '모델(1946)'이란 작품이다. 독학으로 화가가 된 작가는 6·25 때 납북돼 우리 화단에서는 잊혀진 '망각의 화가'였다. '월북'이란 낙인이 찍혀 오랫동안 존재감이 없다가 1980년대 해금되면서 재평가를 받은 작가다.

흐트러진 모습으로만 보면 엘리트 풍의 신여성은 아닌 듯하다. 차분하고 다소곳한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와도 사뭇 다른 자태다. 척 봐도 '노는 여자'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천박하거나 급이 낮은 작품은 절대 아니다.

발표 당시로선 획기적인 작품이다. 시대상황으로 볼 때 당대의 터부를 깬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미술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이란 얘기다. 그런 탓에 앙리 마티스 풍의 면모가 엿보인다는 말도 있다. 당시에는 관능적이고 외향적인 여성 모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서양의 화집을 보고 관념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작품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하는 것도 과히 엉뚱한 추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구도 또한 파격적이다. 공원의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을 중심으로 꽃을 배치했다. 대담한 포즈의 여인을 강조해 보는 사람의 시선을 낚아채려는 작가의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팔을 벌려 의자를 짚은 모습에서 당당함과 자신감이 발산된다. 공공장소인데도 남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있다. 편하게 앉은 탓에 적당히 벌려진 다리 사이로 속옷이 살짝 보이도록 한 것은 관람자를 의식한 작가의 고도의 스킬이리라. 여인이 시선을 돌려 꽃을 보고 있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자 친절한(?) 배려가 아닐까. 그럼으로써 보는 사람에게는 예술적 영감과 함께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있다.

임군홍은 납북된 후 북한에서는 문화 선전성 소속으로 주로 선전화를 그렸다. 무대 미술 및 영화 촬영소의 의상 디자인의 권위자로도 활동했으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정상급 화가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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