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대하여
이름에 대하여
<정 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 정덕재
  • 승인 2013.07.1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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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의 연속이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의 공부는 그 양과 정신적 무게가 최고조에 이르는 기간이다. 하지만 교실과 학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10대들이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부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부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딩아빠 잡설’은 이런 고민들을 해보려고 마련한 코너다. 고딩을 키우고 있는 필자의 경험과 동시대 부모들이 들려주는 생각을 펼치며 자녀와 소통하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더불어 어른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함께 살펴보려 한다.

 

1.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지난 1973년 ‘이름 모를 소녀’라는 노래를 들고 데뷔한 김정호의 목소리는 그 소녀보다 더 쓸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마치 요절을 예감이나 한 것처럼.

이름 모를 소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던 남성들이 많을 것이다. 이름을 알아가기까지 가슴이 뛰었던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이름을 알고 난 뒤 시간이 점차 지나는 동안에도 그 가슴이 여전히 뛰었을까. 아니면 생물학적인 심장 박동소리만 남아있을까.

2.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로 널리 알려진 시인 엘리어트는 고양이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그중에서 이름과 관련한 이런 표현이 있다.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에겐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다
독특한 이름과 좀 더 위엄있는 이름
그렇지 않고 어찌 꼬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을까

시인 김춘수는 ‘꽃’을 통해 이름의 존재성을 이렇게 해석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3.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난 3월. 고딩 녀석이 나에게 처음으로 부탁한 준비물은 매직이다. 입학 이틀이 지난 저녁 무렵, 신발주머니를 비롯해 몇 군데 이름을 써야 한다며 지워지지 않는 유성매직을 사오라는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물건에 자신의 이름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언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는 건 소유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남과 다른 구별을 뜻하기도 한다.

4.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여드름 난 고딩 녀석들이 자신의 등짝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교문에 들어가는 모습을 가끔씩 본다. 그리고 학교 앞 현수막 게시대에 선배들의 이름이 걸려 있는 걸 간간이 보게 된다. 대개는 무슨 무슨 고시 합격이나 임용과 관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지만.

- 1년에 헌혈을 열 번 넘게 한 선배
- 대학에 가서도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선배
- 대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가게 일을 도와 대를 잇고 있는 선배
- 서른 중반에 아이 셋을 낳고 부지런히 분유 값을 버는 선배
- 자신의 삶을 고민하면서 명문대를 자퇴하고 인도로 떠난 선배
- 중소기업 입사 7년 만에 대리로 승진한 선배
- 대기업에 다니다가 귀농한 선배

이런 선배들의 이름을 교문 앞 현수막에서 볼 수 없는 걸까. 고딩 녀석이 교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다양한 선배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것만으로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름을 듣고 부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름이 더 많다는 걸 고딩 녀석이 깨우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이름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인생이야기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는 수성매직도 선택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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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작가는

배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를 펴냈고 현재 영상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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