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부 위해 독서실 가는 고딩 있을까 ?
미술공부 위해 독서실 가는 고딩 있을까 ?
<정 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 정덕재
  • 승인 2013.07.15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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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
사회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존 러스킨은 화가이자 예술비평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나 버나드 쇼는 그를 두고 당대 최고의 사회개혁가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그림과 관련한 업적도 뛰어나다. 러스킨의 여러 저서 가운데 ‘드로잉’이라는 책이 있다. 1857년 펴낸 초판본의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 나는 학생들이 자연을 관찰하며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가르쳐주기 보다는 드로잉을 통해 어떻게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중략) 내가 제안하는 모든 과정과 지침들을 제대로 따라온 학생이라면 드로잉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단 하나, 즉 인내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드로잉 스승은 바로 문 밖의 나무와 언덕이라는 것도…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선긋기부터 색과 구성에 이르기까지 드로잉의 과정을 설명하는 교과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차례차례 따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정 수준에 오를 것이다” 라며 누구나 드로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자연에 대한 이해와 관찰 그것을 통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알려주고 있다.

2.
고딩 녀석이 중간고사를 앞두고 독서실에 간다며 집을 나선다. 집에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나는 고딩 녀석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독서실 1층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사 먹는 재미를 즐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일반적인 질문을 몇 마디 던졌다.

“독서실 가면 무슨 공부하니 ?”
“수학하고 국어”
항상 말이 짧은 녀석이 이번에는 답변을 조금 더 이어간다.
“내 친구가 우리 반 수학 짱인데 나한테 잘 알려줘”
“친구한테 배우는 거 괜찮아 ?”
혹시나 자존심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 괜찮아 쉽게 잘 알려줘”
구김살 없는 표정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현관문을 밀고 나가는 고딩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잔소리처럼 한 마디 더했다
“근데 음악이나 미술은 공부 안하니 ?”
녀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보곤 ‘어휴’ 하는 외마디 신음을 내뱉고 나갔다.
아마도 그것은 고등학교 성적평가를 너무 모른다는 무시성 신음이었을 것이다.

3.
서둘러 휘갈겨 그린 것처럼 보이는, 최소한의 선만으로 경제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결코 서투른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다. 위대한 화가라면 일부러 서둘러 그린 척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애절하게 갈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연필이나 펜을 잡지 않는다. 그는 선이 ‘두 개’ 필요한 그림에서 하나만으로 그려 자신의 재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대한 화가들의 기술을 함부로 흉내 내서는 절대로 안된다. 대신 그의 지식을 배우고 감정을 공유한다면 위대한 화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손에서도 빼어난 기술이 자연스레 농익을 것이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 중에서)

4.
본다는 것은 시각을 통한 인식의 출발이다. 그림이 있었기에 사진이 탄생했고 영화와 텔레비전 등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 하려는 흐름도 커지고 있다. 영상문화가 삶의 상당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즉 미술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 필요하다.

“이번 미술시험 범위가 원근법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에는 원근법에 대한 철학적 논쟁도 많았다고 하네. 그리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시각 개념도 원근법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뭔 얘긴지 어려워.”

고딩 녀석이 이런 말을 하면서 도록이나 미술사 책을 가지고 독서실에 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시험을 앞둔 주말에 공부를 한다며 대전시립미술관이나 이응노미술관에 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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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작가는

배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를 펴냈고 현재 영상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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