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원도심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만난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원도심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만난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77) 미룸갤러리에서 세월호를 만나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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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지난 4월 16일. 대흥동의 옛 골목을 거슬러 올라 자그마한 미룸갤러리를 찾았다. 네 번째 4월 16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봄날 햇볕 가득한 갤러리에 들어서서는 순간 시퍼런 색들이 호흡을 틀어막는다. 이 색은 그날 가라앉는 배 안에서 그들에게 죽음으로 다가왔을 그 색이었다. 홍성담 화백은 바로 그 색으로 그들의 마지막 들숨날숨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보는 이의 숨을 막아버린다.

부산과 광주를 거쳐 대전에서는 미룸갤러리에 자리 잡은 ‘2014. 4.16. 참사《들숨날숨》’이다. 또 다른 이름은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 전시회. 홍성담《슬픔으로 그린 생명들》’이다.

홍성담 화백은 현대사의 굴곡들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사람이다. 화가 본인이 독재정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작품들이 파괴당하면서도 악마 같은 권력에 의해 벌어진 현대사의 악몽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월호라는 비극의 현장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같이 아파할 것을 제안한다.

4월 16일 우리가 본 것은 천천히 물속으로 사라지는 배의 밑바닥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무기력과 처참함이었다. 그러나 홍 화백은 바로 그때 맹골수도의 배 안으로 성큼 다가간다. 누구도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고 떠올리기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지만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보는 이의 뒤통수를 부여잡는다.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봐야한다.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제일 먼저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이라는 작품을 만난다. 시퍼런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배 안에서 아이들은 하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그 중 그림의 오른쪽에 위치한 한 아이는 체념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치 무책임한 어른들을 노려보는 듯한 이 아이를 그리는 순간 화가는 화실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림도 다른 것보다 높이 걸려있다. 하늘을 보는 아이들의 시선과 눈맞춰버릴 관객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내 몸은 바다 3. 기억교실’을 보는 순간 관객은 눈동자 없는 아이가 눈 맞추고 만다. 아이는 교실에 앉아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고 있다. 처음에는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온몸이 바다로 가득 찬 아이는 그러나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우리의 아이이다. 비뚤어진 칠판에 쓴 글씨는 바로 그 아이의 것이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눈물’은 바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다. 눈동자가 없고 맨발에 찢어진 옷을 입은 아이는 무채색이다. 그 아이는 품에 엄마를 안고 위로하고 있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했던 아이가 올라와 엄마를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하지 못한 우리의 꿈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깊숙이 힘차게 발을 딛고 서서 세월호를 들어 올리고 있다.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우리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무거운 배를 들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불끈 들어 올려야했을 배를 이제라도 들어 올리고 있다. 꿈일지라도 들어 올리고 있다.

홍 화백은 이 작업을 하면서 유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유가족들보다는 죽은 아이들 편에서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위로하는 단순한 그림은 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 어떤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갔는지, 우리 아이들이 각자 비밀스럽게 가슴에 간직했던 꿈과 희망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지금 어디를 서성이고 있는지, 우리는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당했던 끔찍한 고통을 직면하고 대면해야 합니다.”

‘내 몸은 바다 3. 기억교실’
‘내 몸은 바다 3. 기억교실’
눈물

작고 환한 갤러리를 맹골수로에서 침몰하는 세월호 안으로 만들어버린 화가의 신념은 이렇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아야합니다. 이것만이 제2의 세월호 학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5월 4일까지 이어진다. 지난 4월 20일에 그림이 한번 바뀌었다. 세월호의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시를 다녀온 이들이 두 번 다녀와야 하는 이유이다.

시인이자 갤러리의 대표인 김희정 씨는 말한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픔을 견디며 슬픔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의 소명이죠. 지금 여기 홍성담 화백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를 나서면서 아니, 세월호를 나서면서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4월 16일은 하나만을 지칭하는 날로 고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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