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이정민 기자]
“아 그 산이요? 잠시만요”
주황룡(54‧사진) 대전시 경제정책과 사무관은 주저 없이 지도를 펴내 ‘그 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몰라서 지도를 핀 게 아니다. 워낙 다닌 산이 많아 잠깐 기억을 못 했을 뿐 주 사무관의 발자국은 ‘그 산’에 찍혀 있다.
지도에서 산을 찾은 주 사무관은 설명을 내놓는다.
“지리산은 어머니 같습니다”, “비온 다음 날 한라산 가보셨나요? 백록담에 고인 물, 정말 환상입니다”, “대전 사람이라면 역사와 문화 의미가 깊은 식장산에 가볼만 하죠”
그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은 이미 산에 가 있다.
특히, 주 사무관은 대전의 산이란 산은 다 가봤다고 한다. 때문에 공직사회에서 그는 산악인으로 통한다. 주 사무관의 발자취를 추적해 봤다.
애연가에서 등산가로
애연가였다. 하루에 많게는 두 갑의 담배가 그의 입으로 향했다.
애연가로만 끝났으면 좋았을 터. 술도 좋아해 몸무게가 지금보다 20㎏ 많은 80㎏였다. 두 손으로 침대를 짚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 한다고 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거구인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던 주 사무관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계기가 소소하다. 지난 2005년 걷다가 우연히 발목을 삐었다. 그리고 침대를 짚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 순간 머리에 이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살아야하나’
목동에서 당시 근무지인 동구 대청동사무소까지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얼마 못 걸었지만, 점차 거리를 늘려 나갔다.
걷기에 재미를 붙인 그에게 세천유원지가 눈에 들어왔다. 야트막한 산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 사무관이 등산에 빠진 순간이다.
이후 대전에 있는 산이란 산은 다 다녔다. 시청 산악회인 산사모도 가입, 등산화 끈을 더욱 조여 맸다.
처음엔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등산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느꼈다. 몸의 변화 때문이다. 예전보다 폐활량이 좋아지고 손발 저리는 것도 없어졌다. 두 손을 집지 않고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몸무게는 어느 덧 20㎏가 빠졌다.
가장 큰 변화를 느낀 것은 주 사무관 자신이다. 과거 아내가 “산에 가자”고 하면 핀잔을 줬다고 한다. 등산 일정인 직장 워크숍에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산을 피했다.
지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면 등산 장비를 찾는다. 담배가 그의 손을 떠난 지도 한참 됐다.
“어머니 같은 지리산…대전 산도 최고죠”
주 사무관이 가장 좋아하는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식수가 풍부하다. 작은 물통만 갖고 가도 산행에 무리가 없다.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이면 지리산 산자락에 도달할 수 있다. 4년 전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까지 봤다. 쏟아지는 햇살에 황홀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머니 품 같이 편안한 산이 지리산이다.
물론, 대전에도 아름다운 산들이 많이 있다.
식장산과 보문산 사이 동우리봉에서 야경의 황홀함을 한 몸에 느끼고 하산을 하던 중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랜턴으로 나무를 비추니 새 한 마리가 마치 아이 같이 졸고 있었다. 등산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 사무관은 이 같은 매력을 갖춘 대전 산들을 설명했다.
우선 식장산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는 “삼국시대 백제 성들이 식장산에 많이 남아있다. 문화‧역사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깊은 식장산은 꼭 가볼만 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학창시절 대전 사람이라면 한번쯤 소풍으로 가봤던 보문산은 과거 추억을 떠올리게 도와준다.
아기자기한 매력에다 암벽이 있는 구봉산은 설악산의 축소판이다. 특히 정상에서 바라본 노루벌에 햇살까지 쏟아지면 벅찬 감동을 느낀다.
계족산은 초보자도 가볍게 갈 수 있는 산이다. 황톳길은 걷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 사무관은 대전 둘레산길도 소개해줬다. 총 12개 코스인 대전 둘레산길은 구간별로 짧게는 7.9㎞, 길게는 13.6㎞로 구성돼 대전을 휘감고 있다.
그는 “금동고개 소나무 앞에서 만인산 휴게소까지 13.1㎞의 2구간은 초보자한테 힘들 수 있지만, 워낙 정비가 잘 돼 있다”며 “안산동 어두니마을 입구에서 계룡휴게소인 8구간(9㎞)와 계룡휴게소에서 수통골 주차장까지 9구간(10㎞)은 아무래도 계룡산 국립공원 주변이다 보니,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부분 산을 정복한 주 사무관은 아직도 욕심이 있다. 남북 분단으로 가보지 못한 북한 지역의 산에도 그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등산의 즐거움은 성취감입니다. 올라갈 땐 힘들지만 정상에선 환희를 느낄 수 있죠. 또 등산을 하면서 만나는 자연에 소중함을 느낍니다”
1986년 당시 충남 보령군 천북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주 사무관은 2005년 시청으로 전입, 관광진흥과 등을 거쳐 현재는 경제정책과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