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숨] 직립의 세월호를 보며 바로 서는 세상을 생각한다
[세상의 숨] 직립의 세월호를 보며 바로 서는 세상을 생각한다
세상의 숨 ⑤ 2018.5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5.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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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누워있던 세월호가 참사 1486일째 자세를 고쳐 바로섰다. 지난 5월 10일의 일이다.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해상크레인에 의해 들려 올려지는 걸 바라보는 유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희생자 299명 미수습자 5명.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는 적지 않고, 헤쳐갈 길도 멀다. 4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침몰한 배가 육상에 오르기까지, 또 육상에 올라 똑바로 서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직립의 세월호, 문제도 바로 세워야
해상크레인에 의해 직립한 세월호의 각도는 94.5도. 정상적이라면 배라면 90도여야 하지만 세월호는 그렇지 않았다. 침몰 뒤 인양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또 찌그러진 왼쪽부분과 인양과정에서 설치된 철제빔 등의 영향으로 배의 균형은 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94. 5도까지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94.5도라는 직립의 수평이 지나온 세월의 굴곡을 대변해주지 않나 싶다.

4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여전히 정확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다. 여러 의혹과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뉴스 보도가 많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 정부와 관계자들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거가 축소하는 데 급급해 왔다는 실체가 하나 둘 들어나면서 그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대통령에게 하는 보고내용이 부실했고 또 보고 시간이 조작됐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세력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다. 더불어 의심의 시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에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는지, 아니 규명하지 않는지, 의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궁금증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의혹과 설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논란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의 의견도 조금씩 달랐다. 여러 언론과 인터넷상의 논객들은 선체 내부적인 원인, 외부충격설, 앵커침몰설 등 다양한 사고 원인에 대한 나름의 증거를 들댔다.

세월호가 바로서면서 정확한 원인규명의 길은 한발 더 다가갔다. 옆으로 쓰러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살피지 못한 선체 내부도 이번 기회를 통해 다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고의 원인의 실체적 규명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 조사결과가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기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에 주목을 하고 있다. 올해 늦여름쯤에 지금까지의 활동을 종합한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까, 여전히 진실규명의 기대를 갖는 것이다.

스승의 날에 선생들을 생각하며           
세월호는 바로 섰지만 일어설 수 없는 선생님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때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이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세월호 순직교사 묘소를 찾았다.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생들은 묘소 앞에서 참배를 하고 비석을 닦으며 인근을 청소했다. 이 학생들이 세월호를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중학생 때 일 것이다. 낯선 이들의 묘역을 정비하면서 학생들은 어이없게 숨진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잠시나마 생각하지 않았을까. 안전에 대한 교육이 강화됐던 것도 그때의 사고 때문이었다고 학생들은 기억하지 않을까.

참사로 숨진 교사들의 사연은 학생들 만큼이나 안타까웠다. 지난해 11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에서는 대전현충원에 묻힌 고창석 선생의 안장식을 찾은 적이 있다. 발령받은 지 한 달 만에 세월호를 탄 고창석 선생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했다. 당시 대전현충원에 순직으로 인정된 교사가 안장된 것은 고창석 선생이 처음이었다.

당시 현충원에서 만난 선생의 한 선배는 고인을 이렇게 기억했다.

“운동하는 학생들이 학업에 다소 소홀한 경향이 있는데 고 선생은 참 성실했어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인이 남긴 뜻을 기리기 위해 대학에서는 고창석 강의실도 만들었습니다”

선생의 이름을 딴 강의실을 만든 것은 추모를 넘어서 더 오랫동안 뜻을 기리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고현장에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선생님들은 여럿이다 지난 1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숙연한 안장식이 열렸다.

영면에 든 사람은 고 양승진·박육근·유니나·전수영·김초원·이해봉·이지혜·김응현·최혜정 교사 등이다. 고인들의 유해는 순직 공무원 묘역에 안장됐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은 고창석 선생의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다른 곳에 묻힌 선생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생님의 순직 인정까지 어려운 과정을 거친 이들도 있다. 그중에 한 분이 고 김초원 선생의 아버지 김성욱 씨다. 지난 달에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작가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순직을 인정 못 받으면 그냥 억울한 죽음이 되잖아요. 그것 뿐이에요. 일부에서는 순직을 인정받으면 돈이 나온다고 하는데 따로 그런 건 없어요. 순직이 안됐으면, 지금 납골당에 있을 거에요. 먼 훗날에도 그냥 ‘죽음’으로 기억되죠. 의로운 죽음이 아니잖아요. 저는 우리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사랑하는 학생들을 지키며 최후를 맞은, 자랑스러운 딸이에요. 딸에게 의로운 죽음,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3년이 넘는 싸움을 했다.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똑같은 업무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졌는데, 기간제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값진 희생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헌신으로, 함께 노력한 이들의 힘 덕분에 뒤늦게나마 순직을 인정받아 고인은 대전현충원에 묻힐 수 있었다. 명예를 찾아주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의로운 죽음이었기에, 학생들을 먼저 생각한 선생님의 자리를 지켰기에, 우리는 그들의 명예를 아름답게 지켜주어야 한다.

5월, 직립의 세월호를 보면서, 또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우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를 생각한다. 우리가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준 역사였기 때문이다. 불행한 역사, 비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할 게 많다. 여전히 기억의 계승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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