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아버지 다산의 두 아들 향한 ‘노심초사’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아버지 다산의 두 아들 향한 ‘노심초사’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⑮ 정약욕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06.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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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조선 정조 때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이를 풀이하고 편집한 이는 박석무(朴錫武,1941~)다. 그는 국어 교사로 일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 해온 일은 다산연구소 이사장이다. 다산에 대하여 최고의 권위자이다.

1979년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려 국민들이 참담했던 시기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처음 출간하였다.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중죄인으로 18년 동안 있으면서 자기 아들에게, 형 약전(若銓)에게, 서제 약횡(若鐄)에게, 스님과 젊은 제자에게 여러 편지를 보냈다.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 한자(漢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 다산이 자기 분신인 두 아들, 형과 아우, 지인들에게 무엇을 말했을까? 편지 속에는 다산의 높은 풍모와 훌륭한 인간미가 배여 있다.

1801년 2월 다산은 멀리 전라도 강진으로 세 번째 귀양길에 올랐다. 그는 남인 신분이다. 동인에서 갈라진 남인은 만년 야당이다. 겨우 조정에 진출할 수 있던 정조 시기에 그는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정조가 죽은 얼마 후, 천주교로 인하여 가문은 폐족이 되었다. 한국 천주교사에서 그의 친형제와 조카들, 친인척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궁한 살림 올 이 없어 늘상 옷을 벗고 사네./부서진 집 바퀴벌레 밭 두둑엔 팥 꽃 남아/병이 많아 잠은 줄고 책쓰느라 근심잊네. 오랜 비 괴롭잖네.

유배지에서 지은 시이다. 장마 때였나. 연일 주룩주룩 내리는 비 속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자기 처지를 시로 표현했다. 유배는 감옥과 같다. 오늘은 오늘이 아니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누가 찾아올 리 없다. 의관을 차려입을 필요가 없다. 천장은 새고 그 사이로 바퀴벌레가 떨어진다. 고맙게도 팥꽃이 피어있다. 몸은 병들었다. 이런저런 근심이 있다. 책짓는 것으로 다 잊는다.

유배지 강진으로 떠날 때 첫 아들 학연(學淵)은 열여덟 살, 둘째 아들 학유(學游)는 열다섯이었다. 그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에 아버지 다산은 근심과 걱정, 기대와 희망이 컸다. 몰락해가는 가문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자식에게 조바심 내는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었다. 다산은 편지에서 구구절절 아들이 학문에 매진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폐족이다.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느냐?”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聖人)이야 못 되겠냐? 문장가가 못되겠냐?”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것은 독서 밖에 없다.”

“폐족이라 과거 공부 안 하고, 학문 다운 학문할 수 있는 기회이다.”

다산은 두 아들을 직접 곁에 두고 가르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안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한다. 역정을 내기도 칭찬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타이른다. 그는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가르친다. 어머니를 위해 새벽이나 늦은 밤에 방이 찬가 따뜻한가 항상 점검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차면 따뜻하게 불을 때 드리되 이런 일은 종을 시키지 말고 직접 하라고 하고, 둘째 아들 학유의 주량이 세다고 듣자 곧바로 술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편지를 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오직 두 글자를 부적처럼 지니고 살라고 한다. 한 자는 근(勤)이고, 한 자는 검(儉)이다.  다산은 두아들에게 책 읽는 방법도 말한다. 정신력을 집중하여 읽고, 의미를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완전히 알 때까지 끝장을 보라 한다.

그가 자식들에게 권하는 일상생활은 이렇다. 3~4천의 책을 서가에 진열하고, 일 년 정도의 먹을 양식과 집 주위 텃 밭에 과일, 채소, 뽕나무와 삼, 꽃과 약초를 심어먹고 관상하며, 방에 거문고와 주안상이 차려있어 반가운 손님이 오면 닭 한 마리와 생선회를 안주로 탁주 한 잔에 맛있는 풋나물로 즐겁게 먹으면서 고금의 일을 논하고 흥겹게 산다면 폐족이라도 안목 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반일지라도 필요한 농사를 직접 짓기를 권하는 것이 눈에띤다.

다산의 기본 철학은 유학이다. 바탕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다만, 그가 해석한 맹자요의(孟子要義)에서 실천을 전과 다른 윤리기준으로 제시한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우물에 빠졌을 때, 그저 동정심인 측은지심(惻隱之心)만 발생하면 어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유학의 가치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마음의 본성이지만, 도덕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 노력과 실천을 통하여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양의 윤리학이 아니라 실천의 윤리학이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 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 책을 섭렵하여 옛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 근원을 캐볼 뿐아니라,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실학(實學)에 마음을 두어야 하고 옛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전 공부로 바탕을 만들고, 그 바탕 위에 원리를 적용하고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경전 공부는 자기 몸을 닦는 학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치인(治人)에 해당하는 역사와 국방에 관한 것들로 외연확장한다.

다산은 귀양가서 수많은 책을 지었다. 260여 권이나 되는 책들이다.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니다. 두 아들에게도 실생활에 필요한 책을 만들 것을 권하고 책 만드는 법도 가르친다. 오늘날 석박사 과정의 논문 쓰는 방법이다. 일단 어떤 책을 쓸까 하는 목표를 세우고 분야별 목차와 이에 들어가는 내용에 관한 참고문헌을 정한 후 그 참고문헌에서 옮겨 쓰는 소위 초서(抄書)라는 카드 작업을 하고, 이를 편집하여 초고(草稿)를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견이 뚜렷하여야 판단 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내용의 취사선택이 쉬워진다. 그런 다음 토론을 거쳐 초본(初本)을 만들고 토론을 통하여 수없이 고쳐 최종적으로 정본(定本)을 만든다. 다산은 지도교수이고, 아들과 제자들은 석박사 연구생이다. 형 약전은 다산과 토론하는 관련 분야 교수이다. 주서여패(朱書餘佩)) 거가사본(居家四本)도 이런 식으로 만들도록 자세히 편지 속에 적었다.

다산은 실학자 모습으로 사대부가 사대부답게 잘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일을 하면서도 선비 다우려면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실험을 하여 가장 좋은 결과를 낳게 하고 자기만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책을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것이 지식인의 태도라는 것을 강조한다. “양계(養鷄) 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에도 품위있는 것과 비천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차이가 있다. 농서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봐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 만들어 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중략) 많은 책 중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 낸 뒤, 차례로 정리하여 계경(鷄耕) 같은 책을 하나 내라.”

편지 내용 중에는 다산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이 들어있다. 다산의 유배가 한참 진행되여 조정에서도 공격이 무딜 즈음 다산의 유배에 앞장선 홍의호, 강준흠, 이기경에게 다산의 해배(解配)를 간청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큰 아들 학연의 편지에 이렇게 답한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 해를 입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다산은 날카로운 칼로 내려치듯이 아들 제의를 거절한다. 이는 어려울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게 투항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아들의 등골이 오싹 했을 것이다. 다산은 군신관계에서의 벼슬살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임금을 섬길 때는 임금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임금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끝으로 죄인의 지식으로 출사도 못하고 기죽어 있을 두 아들에게 폐족일지라고 선비의 기상이 살아있기를 강조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서도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다산은 자기 인생에서 비참할 정도로 아픔이나 좌절이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인생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열정을 바치고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다산이 편지 속에서 그토록 후세들이 읽어주고 책 한부분이라도 베껴두기를 바랐던 책들은 그의 바람대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날까지 최고의 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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