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선비, 충청 기호유교와 항일운동의 주역이 되다
① 선비, 충청 기호유교와 항일운동의 주역이 되다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8.06.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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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활용교육의 일환으로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을 총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직업과 생애를 통해 오늘을 사는 학생·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진로와 직업의 세계를 풍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주제는 ‘선비’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외치고,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立身行道 揚名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다짐했던 조선 선비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수많은 충청지역 선비들이 항일운동에 앞다퉈 앞장섰던 이야기를 학생기자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굿모닝충청 학생기자단이 사계 김장생을 비롯해 김집, 송준길, 송시열 선생을 배향한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에서 조선 선비들의 품격과 예절을 배우고 있다.

[굿모닝충청 권성하 기자] 선비.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또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선비는 순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사(士)’로 쓰이며 유교 이념을 담당한 인격이라는 뜻에서 ‘유(儒)’로도 쓰인다.

선비라고 하면 흔히 조선시대를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선비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 나온 기록만 해도 2세기 말엽 고구려 고국천왕 때, 재상의 자리에 올랐던 을파소(乙巴素)가 퇴임하면서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나와서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한 일이다”라고 했다고 쓰여 있다.

조선의 대유학자인 남당 한원진 선생의 인물성이론 사상은 충청도 전역에 의병 운동과 항일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물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선비의 모습은 조선시대에 표준적인 정형화를 이뤘다. 선비들이 사회의 지도적 계층으로서 지위를 다지면서 선비의 생활양상은 사회 규범을 정하는 가치로 자리 잡았다.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터득해 나가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선비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특히 대전, 세종. 충남, 충북지역은 한국 유교역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대전·충청지역은 기호유교의 본산이다. 기호는 경기(京畿)와 호서(湖西)지방를 통칭하는 말이다. 경기는 경기도이고, 호서는 지금의 충청도다. 충북 제천의 의림지를 호수로 볼 때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오랜 이름이다.

역사는 정체성이다. 분명히 ‘기호’나 ‘호서’는 대전·충청의 역사이면서 정체성이다. 그래서 굿모닝충청 교육사랑신문 학생기자단이 충남남부장애인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지난 4월 1일과 5월 12일-13일 실시한 ‘충청지역 인문·역사·문화 콘텐츠 발굴 취재’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다.
충남 홍성 출신의 백야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전투에 빛나는 항일운동가다.

학생기자단의 취재에서 으뜸 키워드는 ‘선비’다. 지난 4월 1일 충남 논산을 방문한 학생기자들은 돈암서원과 궐리사, 명재고택, 노성향교, 종학당 등에서 조선 유교를 주름잡던 선비들의 면모를 실감했다. 또 5월 12일과 13일 각각 충남 예산과 홍성에서 추사 김정희 고택과 기념관, 면암 최익현 선생 묘,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와 매헌기념관, 홍주읍성(조양문, 여하정, 안회당, 홍주아문, 홍주옥사)과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만해 한용운 생가, 남당 한원진 선생 사당인 양곡사 등을 돌아보며 충남의 선비정신이 어떻게 항일투쟁으로 연결됐는지를 취재했다. 중국의 공자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동양사상인 유교가 한국 근대사에서 호서지역(대전·충청)에서 어떻게 항일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됐는지를 탐구했다.

과연 ‘선비’란 무엇인가? 학생기자들이 얻은 해답은 다양하다. 우선 관직에서는 임금의 바로 아래인 영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고, 비록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유교의 도(道를) 강론하고 실천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진 신분이다. 오늘날로 치면 멘토이자 구루(Guru)의 역할을 했다.    책 ‘소학’은 인간의 성장과정을 통해 선비의 생애를 잘 보여준다. 어린아이가 가정에서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10세가 되면 남자아이는 사랑에서 아버지와 자며 선생을 찾아가 배우고, 20세가 되면 관례(冠禮·어른이 되는 예식)를 하고, 30세에는 결혼을 하고, 40세에는 벼슬에 나가고, 70세에는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선비가 학문하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도리를 실천하는 인격적 성취에 목표를 뒀다. 또 자신의 덕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관직에 나갔다. 물론 관직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선비에게 관직은 자신의 뜻을 펴고, 신념을 실현하는 기회였다. 때문에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에서 무조건 복종과 충성하지 않았다. 선비와 임금의 관계는 의리로 맺어져 있고, 의리가 없으면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선비들의 ‘의리 정신’은 타민족의 침략을 당할 때 빛을 발했다. 침략자를 의롭지 않은 집단으로 규정하고, 항거했다. 임진왜란 당시 선비들의 항전을 의병(義兵)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선비들이 나라의 위기에서 생명을 버리면서 항거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의리에 합당하다는 신념이며 강인한 선비정신의 증거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는 상해 임시정부가 전세계에 공인받는 쾌거로 이어졌다.

선비는 매우 독특한 관직 생활을 했다. 처음부터 세상에 봉사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관직을 통해 자신의 학문과 신념을 펼치고자 했다. 선비들이 가장 활발히 참여한 관직은 경연관(經筵官)·언관(言官)·사관(史官)을 꼽을 수 있다. 경연관은 임금을 교육시키는 등 통치이념에 큰 영향을 줬고, 언관은 임금의 잘못을 고치도록 직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홍문관·사헌부·사간원의 대간(臺諫)이 간관으로서 간언을 담당했지만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도 언제든지 간언하는 것이 권리라고 생각했다. 사관은 춘추관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편찬하는 일을 했다. 선비는 사필(史筆·사관이 곧은 말로 기재한 필법)을 잡았을 때 임금을 비롯한 어떠한 권력과 불의에도 굽히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처사(處士)’라고 불렀는데 학문에 조예가 깊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 세상에 바른 도리를 제시하면 ‘선생(先生)’으로 높은 존경을 받았다. 선생은 벼슬하는 사람의 호칭인 ‘공(公)’ 보다도 훨씬 더 높은 존칭으로 여겨졌다. 벼슬에 나간 선비도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성취해 선생으로 불리기를 바랬다.

선비들은 향촌에서 공동체를 이뤘다. 유교의 도통(道統)을 존숭하고,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文廟·공자를 모신 사당)에 참배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고, 서원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이 선현을 제향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성균관과 향교가 국가의 기관으로서 관학적 성격이 강하다면, 서원과 서당은 선비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동체이면서 제향(祭享)과 강학(講學), 도서관의 역할을 했다.

21세기에 ‘선비’를 떠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한 신분이 아니라 인격의 모범이며 시대 양심의 정신이며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 내면과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원천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직업적 의미를 오늘날에 비춰 볼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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