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고민 Q&A] 임종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입니다
[어르신 고민 Q&A] 임종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입니다
  • 임춘식
  • 승인 2018.06.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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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Q. ‘존엄사법’, 참 좋은 법이라고 생각해요. 한번 가는 인생, 그야말로 곱게 가야죠. 자식들 괴롭히지 말고.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현행 법의 적용을 받는 임종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절차가 너무나 까다롭습니다. (남, 78)

A.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법 자체가 외국에 비해 너무나 까다롭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의식이 없는 환자의 불필요한 연명(延命)의료 행위를 중단하려고 할 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가족의 범위가 축소될 전망입니다.

최근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 산하 연명의료전문위원회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때 ‘가족 전원의 동의’를 받도록 한 현행법상 ‘환자 가족’ 범위를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에서 ‘배우자·부모·자녀’로 축소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즉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증손주 등 수십명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존엄사에 필요한 가족 서명, 배우자·부모·자녀로 줄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 의료를 중단하려면 ①건강할 때 미리 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②말기·임종기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③‘평소 환자가 연명 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가족 2인 이상의 진술 ④가족 전원의 동의 등 네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전원 동의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예컨대 80-90대 고령자 연명 의료를 중단하려면 배우자·자녀·손주·증손주 등 모두 수십 명까지 모여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한 예로 할아버지 환자의 연명 의료를 중단하기 위해 배우자와 4남 4녀, 손자·손녀 등 17명까지 병실에 모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중 한두 명만 연락이 닿지 않아도 불필요한 연명 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법 시행 이후 약 3개월간 의료 현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닿은 문제점은 ‘가족 전원’을 불러모아 동의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한 가족 전원이 가족관계증명서를 지참해 서류에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해야 하는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실제로 모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서류를 떼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환자가 숨져 보호자가 거세게 항의한 사례가 있습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17년 10월 시범사업 기간부터 시행 100일까지 총 6,441명이 연명 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했습니다. 이 가운데 ‘환자 가족 전원 합의’에 따른 결정이 2,463건(38.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족 2인 이상 진술’은 1,733건(26.9%)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명 의료를 중단한 사례 셋 중 둘(65.1%)은 환자 의식이 없을 때 환자 가족이 관여한 것입니다. 말기·임종기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경우(34.4%)나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둔 경우(0.5%)는 셋 중 하나(34.9%)에 그쳤습니다.

존엄사법 시행 이후 불필요한 연명 의료를 받지 않고 존엄사를 택하는 경우는 느는 추세입니다. 시행 첫 달(2월 4일-3월 3일) 1,319명에서 한 달 간격으로 1,894명, 25,27명으로 계속 늘었습니다. 연명 의료를 받는 환자가 월평균 1만 5,000명에 이른다는 의료계 추정을 고려하면, 전체의 9-7%가 매달 연명 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 셈입니다.

현행법은 ‘의료기관윤리위’를 설치한 의료기관에서만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시행 3개월이 넘었지만 윤리위를 설치한 곳은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3,337곳)의 4.3%(142곳) 수준입니다. 상급종합병원 97.6%, 종합병원 26.2% 등 대형병원의 윤리위 설치율은 높지만 병원급(0.3%), 요양병원(1%) 등은 극히 저조한 편입니다.

문제는 병색이 악화돼 본인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평소 가족에게 연명치료 받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환자가족 2명의 일치된 진술로 이행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조차 한 적이 없다면 더 복잡해 집니다. 환자 본인의 의사를 전혀 추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젠 배우자 포함 직계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얼핏 보기에 절차가 합리적인 것 같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급하게 병색이 악화돼 임종과정에 진입한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시작할지, 즉 유보를 결정하는 건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장에선 심폐소생술을 할지 안 할지, 인공호흡기를 달지 안 달지를 일이십 분 내에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가족전원의 동의를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이 과정에서 만약 한 명이라도 빠진 가족이 있다면 의료진은 최대 징역 3년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도 시행 초기 발견된 단점은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고통스럽게 임종을 맞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임종과정시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몰라 주변 가족들이 쩔쩔매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친구가 아닌 직계 가족 2명에게 연명 의료에 대한 의사를 표명하는 것도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웰다잉 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남아있는 삶을 정리하고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래서 존엄을 지키며 죽는 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삶의 질이 떨어지면 수명 연장일 뿐입니다. 남의 신세 지지 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임종 말기 환자들은 말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살아가는 기술이 아닐까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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