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전후 한국사회 실상 고스란히 드러내
[변상섭의 그림읽기] 전후 한국사회 실상 고스란히 드러내
이수억 作 구두닦이 소년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6.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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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억 作 ‘구두닦이 소년’ 1953. 유채 116.8×80.3cm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슈샤인 보이!’.

6·25 전쟁 전후 미군들이 구두닦이 소년을 그렇게 불렀다. 구두 통을 메고 ‘구두 닦어!’를 외치며 거리를 헤매는 왜소한 체구의 소년은 그 시절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우울한 자화상이다. 요즘 시각으로는 상상이 안 되겠지만 60여 년 전 이 땅의 많은 청소년들은 이처럼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수억(1918-1990)은 ‘구두닦이 소년(1952)’이란 작품을 통해 전후 우리사회 민낯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 구두닦이 소년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뒤 배경에는 거리 풍경을 묘사했다. 검정 고무신에 구두 통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구둣솔을 들고 있다. 까까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무표정한 얼굴의 소년은 허기가 느껴지는지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눈은 휑하다 못해 초점이 없다. 화가는 당시 안타깝고 비참한 현실을 소년의 휑한 눈과 얼굴 표정을 통해 보려주려 했음이다.

시선을 소년의 뒤편 배경으로 옮기면 전후 생활상이 그대로 읽혀진다. 한쪽 다리를 잃어 목발을 짚고 가는 사내, 그 옆에는 행상을 나온 소녀, 미군의 군화를 닦고 있는 슈샤인 보이 등이 마치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미군 뒤에 짙은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를 낀 여자들이 서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양공주’라 불렀다. 구두닦이 소년에 버금가는 전후 사회의 아픈 생채기였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는 소년을 중심으로 극단의 풍경이 공존하고 있다. 서로 다른 듯하지만 전쟁이 빚어낸 불변의 결과였고,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당시 서울·대전 등 미군이 주둔해 있던 도시의 거리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남북 정상 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연이은 해빙 무드에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상들의 통 큰 행보에 앞서 60여 년 전 ‘구두닦이 소년’의 애잔한 모습, 슬픈 과거를 기억한다면 통일을 앞당길 큰 결실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수억은 함남 출신으로 일본유학 후 북한에서 미술활동을 하다 6·25 때 월남했다. 월남 후 종군화가로 활동했다. 때문에 전쟁 후 한국사회의 실상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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