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느림의 미학 청산도 라이딩 ③] 상생과 평화의 아이콘 나무늘보… ‘슬로소피’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느림의 미학 청산도 라이딩 ③] 상생과 평화의 아이콘 나무늘보… ‘슬로소피’
  • 김형규
  • 승인 2018.06.23 13: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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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 가기 전 양지리에 세워놓은 구들장논 안내도.
범바위 입구를 알려주는 3거리.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신흥리와 중흥리를 지나 슬로푸드체험관을 지나쳤다면 이후부터는 청산도 본연의 슬로길이 나타난다. 외형상 알려진 청산도 명소는 서편제 등 영화‧드라마 촬영지지만 청산도 천연 명품길은 남쪽 범바위길 일대다. 청계리를 지나면 3거리 도로변에 범바위입구 표지판이 나타난다. 좌측길로 들어서면 가파른 콘크리트길이 이어지고 곧바로 차량은 진입할 수 없는 산책로를 따라간다.

범바위 뒤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청산도 남쪽 바다 풍광은 범바위까지 올라오는 수고를 보상받기에 충분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전망대 매점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기억에 생생하다.   

범바위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적산과 매봉산이 젖가슴처럼 솟아나 길이 험준하고 남쪽 끄트머리 해안선과 맛물려 경관이 빼어나다. 바닷가 산악지형이라 차량통행에 제한이 많다.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더라도 발품(끌바,메바)을 많이 팔아야 한다. 이 때문일까. 청산도를 찾는 많은 이들이 힘 든 범바위길에 오길 꺼린다. 청산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범바위길 명품코스를 먼저 다녀가길 권한다. 나머지 코스는 순환버스나 차량으로 손쉽게 닿을 수 있다. 남쪽 코스를 제대로 답사하려면 꼬박 하루는 잡아야 한다. 갈림길에선 어쩔 수 없이 택일해야 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 섭렵하려면 갔던 길을 다시 밟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매봉산 자락 해안선은 물론 장기미 명품길과 원형이 잘 보존된 구들장논까지 색다른 섬의 둘레길을 체험할 수 있다.

지난 회에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재일교포인 쓰지 신이치(한국명 이규)의 저서 ‘슬로라이프’에 나오는 ‘나무늘보’에 대해 언급했다.

범바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입구에 차를 주차해놓고 1.5㎞정도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범바위 진입로 유채꽃밭.

중남미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세 발가락 나무늘보는 빈치목의 포유동물이다. 게으르고 느려터진데다 지능마저 낮은 이 살덩어리는 열대우림의 살벌한 생존경쟁에선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전히 종족을 번식시키면서 번듯하게 살고 있다.

나무늘보가 느린 이유는 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근육이 적어 가볍기 때문에 가는 나뭇가지에도 매달릴 수 있다. 자신의 핸디캡이 오히려 적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보호장치가 된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먹는 양도 적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주변이 조용할 때 슬그머니 나무에서 내려와 땅을 파고 배설하는 것으로 그의 생활 사이클은 완성된다. 나무늘보는 나뭇잎을 섭취해 얻은 양의 50%를 자신을 키워준 나무에 돌려준다. 생물진화에서 실패작으로 놀림감이 됐던 나무늘보는 저에너지‧순환형‧공생‧비폭력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쓰지 신이치는 영어로 ‘Sloth’라 불리는 나무늘보의 삶의 방식을 사람의 생활에 적용하려 한다. 그는 그러한 삶을 공유하는 인류를 ‘슬로소피’(Pslothophy)라 부른다.

범바위 마지막 진입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범바위 전경.

슬로소피적 삶의 방식은 요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건강관리법과는 정반대다. 모든 매체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근육량을 키우라고 말한다. 소형차량에 대형차량의 6기통 내연기관을 장착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근육량을 6기통 엔진으로 확장하면 음식을 많이 섭취하더라도 쉽게 태워 없애 멋진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범바위 주변 명품길 코스를 알려주는 이정표.
범바위에서 구들장논으로 연결되는 코스를 알려주는 안내도.

유‧무해 논란이 끊이질 않는 활성산소의 유해성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근육량을 늘리기 위한 과도한 운동과 단백질(육류)섭취는 건강에 더 해로울 수밖에 없다. 과식을 상쇄하기 위한 과도한 운동은 활성산소 발생을 두 배로 늘릴 뿐이다. 활성산소를 억제하기 위해 항산화식품을 섭취한다지만 ‘옥상옥’이지 않을까.

슬로소피적 삶을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섭취(Input)와 에너지소비(Output)를 절제해 주변 생태계와 상생하자는 강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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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영 2018-06-25 10:37:14
자신이 섭취한 반 이상을 다시 자연에 돌려주며 살아가는 늘보의 삶에 많은 의미가 있네요
결국 인간도 자연의 섭리를 어기지않는 자연순환형 삶으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가요
청산도 가게되면 범바위부터 꼭 올라가봐야겠습니다 진입로 유채꽃밭 색감이 너무 좋습니다

kusenb 2018-06-25 11:49:01
예전에 남미여행 중에 야생의 나무늘보들을 직접 본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때 생각이 나네요

JC 2018-06-26 20:16:21
나무늘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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