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의 복지이야기] 법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었다지만…
[김세원의 복지이야기] 법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었다지만…
  • 김세원
  • 승인 2018.06.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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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굿모닝충청 김세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이어졌던 상황이 있다. 바로 ‘가정폭력’이다. 과거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집안에서 쉬고 있고, 폭력의 피해자인 어머니와 아이들은 ‘피난처’로, 혹은 친정이나 친지의 거처로 흩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냈었다.

그럼, 요즘은 어떤 모습일까?

가정폭력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가정을 유지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따라서 은폐되거나 실제보다 사소하게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일반적인 폭력에 비해 노출이 되지 않거나 주변에 알려질 가능성이 낮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848건에서, 2013년 16,785건으로 그리고 2015년에는 40,022건으로 급증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가정폭력의 의미를 확대하는 경향으로, 적용 범위를 친족관계에 국한시키지 않고 혼인 또는 동거하지 않는 친밀한 파트너(intimate partner), 가사도우미 등 친족이 아닌 동거인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이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가족의 구성원으로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 자기 혹은 배우자와 직계존비속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계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는 적모(嫡母)와 서자(庶子)의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동거하는 친족으로 명시하고 있다. 외국의 입법추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정폭력 대상자를 적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해 봐야할 분야는 경찰의 현장출입,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임시조치 등에 관한 실효성이다. 가정폭력방지법에서는 형장출입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 그러나 즉각적인 강제조항은 아니고 출입을 거부할 시에 과태료의 부과만을 인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한 강제출입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 임시조치의 신청 등에 관한 실무적 언급은 없다.

가정폭력처벌법에는 현장출입에 대한 규정이 없고, 응급조치 거부 시 위반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과 과태료 규정 역시 없다. 긴급임시조치에 있어서는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가능하지만 강제력 행사는 할 수 없다. 임시조치의 신청에 있어서도 과태료 처분만 가능하지 강제력의 행사는 불가능하다.

종합해보면 가정폭력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강제력’을 동원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영국에서는 가정폭력이 발생한 현장에 경찰의 강제출입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응급조치나 긴급응급조치도 강제적으로 할 수 있다. 필요시 가해자들을 24시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임시조치시의 강제성 역시 인정하고 있다. 24시간 경찰의 체포가 가능하고 최대 5000파운드의 벌금이나 2개월 이하의 징역을 양형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을 엄단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와 사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정책과 서비스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정폭력의 책임을 ‘국가’에게 묻는 것이다.

인권 침해 예방이라는 소극적 의무에서 벗어나 가정폭력 해소를 위해 필요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가정폭력에 대해 적극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국가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며,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사와 처벌을 실시하며,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마련하여 운용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국가의 가정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의무를 표방한 바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가정폭력 고소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은 점, 그리고 설령 고소가 없더라고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조사 및 처벌을 하지 않은 경우 국가의 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좀 더 상술하자면 “피해자의 신청이 없더라고 생명에 대한 실질적이고 급박한 위험에 대하여 국가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국가가 이와 같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19세기의 잉글랜드에서는 부인을 폭행했을 경우, 주변 사람들은 호각 뿔피리 등으로 무장하고 “이 집에는 한 남자가 살고 있다네, 마누라를 두들겨 팬 남자라네!. 마누라를 두들겨 팬 남자라니까! 정말 창피한 일이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야!”라는 노래를 부르며 경고성 망신을 주었다. 공동체의 규범을 어긴 자에게 가하던 처벌행위로 일종의  샤리바리(charivari)였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런 방식으로 샤리바리를 하기는 여의치 않겠지만 ‘은폐․ 반복 ․ 순환 ․ 중복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 하는’ 특수성을 가진 가정폭력은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묵과할 수 없다는 공감대 형성은 매우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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