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혐의 부인하며 보상도 없는데...불구속 상태서 재판받게 해달라 요구
[굿모닝충청 정종윤 기자] 25일 오후 2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301호 법정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지만 법정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충남 천안을 중심으로 폰지게임(금융피라미드 사기)을 일삼은 AB&I 이은주(40·여·대표)와 이씨 남동생 이정수(38·이사), 모친 박경미(59·여), 외삼촌 박찬(45·본부장) 등 관련자들의 10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들은 재판에서 유사수신은 인정하면서 사기 부분과 공모 부분은 적극 부인했다.
이들의 발뺌이 이어지자 법정 한 쪽에 앉아 있던 60대로 보이는 한 노인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이 끝난 뒤, 그를 만났다.
“저놈들 때문에 아들이 죽었어, 애비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화가나”
재판 때 마다 빼먹지 않고 법정을 찾는다는 한모씨는 자신의 둘째 아들이 투자사기를 당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씨는 “둘째 놈이 2016년 11월부터 돈을 넣기 시작해서 2017년 1월까지 3억을 넣었어. 지 형이랑 같이. 그 해 3월부턴가 이자가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더라고. 저놈들이 한 달만 있으면 원금하고 이자 같이 준다 해놓고 계속 미루다 그대로 못 받은거지”라고 했다.
이어 “작은 아들놈이 화물운전을 했는데 돈이 어디 있어서 투자를 했겠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다가 넣었는데 잘못되니까 빚 독촉을 받았지. 일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전화는 오고... 견디다 못해 결국 지(자기) 차 안에서 목을 맸어. 안식구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는데 일주일 혼수상태로 있다가 떠났어”라며 울먹였다.
한씨 큰 아들 또한 2억여 원의 빚을 져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한씨는 “땅이라도 팔아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시골 땅이 어디 잘 팔려야지. 죽은 둘째 놈이 두고 떠난 고1, 중2 애들 생활비도 내가 보내주고 있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 죽고 나서 정신 빠진 상태로 저놈들 사무실을 찾아갔었어. 박경미를 만났는데 ‘너희들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고 하니까 경찰에 신고한다면서 도망가더라고. 그 뒤에 있던 아들 놈(이정수)은 피해자 돈으로 벤틀린가 뭐가 3억짜리 차도 뽑았다는데 망할 것들, 천벌받을거야”라며 눈물을 훔쳤다.
한씨는 ‘고수익 투자사기’에 대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그 심리를 이용 한 거지. 알면서도 당하는 게 이런 사기수법이야. 상종을 말아야해”라고 당부했다.
천안 ‘폰지게임’ 피해자 대부분 일상생활 어려워
이날 재판에서는 한 피해자가 조용히 손을 들더니 판사에게 호소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변호인이 이은주를 제외한 박경미, 박찬을 보석 신청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전모(43)씨는 “존경하는 판사님, 불구속 상태에 있는 이정수는 밖에서 피해자들과 합의는 커녕 신고를 하면 돈을 더 못 돌려준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회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당 중 두 명을 또 풀어주면 피해자들은 저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게됩니다”라며 “빽을 써서 나왔다느니 이런식으로 떠벌리며 계속해서 사기행각을 일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5억여 원을 이씨 남매에게 차용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재판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1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면서 일상생활도 어려워졌다. 피해자들은 돈이 없어 변호사도 못사는데 저들은 비싼 선임료 내고 좋은 변호사 통해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약 없으면 잠도 못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신모(50대)씨는 친인척, 지인 돈 7억여 원을 투자했다.
신씨는 “우리 노모께서도 지난해 홧병으로 돌아가셨다. 살인·성폭행·강도만 강력·흉악범죄가 아니다. 이런 유사수신 사기행위야말로 더 흉악한 범죄”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앞서 지난해 10월께 열린 첫 재판에서 AB&I 대표 이씨 등 친인척이 모집책들을 통해 불법투자 모집한 금액이 3000억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피해자들이나 동생 이씨, 모친 박씨, 외삼촌 박씨를 통해 알게 된 피해자들로부터 총 3093억 9865만원을 송금 받았다.
검찰 공소장에 명시된 피해자 수는 대략 1000여명을 넘겼다.
피해자 중 가장 큰 액수의 경우, 73억여원에 달했다.
이들은 서울 강남에 본점을, 천안·경주 등 5개의 본부와 30개 지점을 두고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피해자들에게 “돈을 투자하면 원금 이자로 월 2~3%를 주고 원금 보장, 특별한 계약기간 없이 원할 때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불법투자 모집을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또 고액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자산, 수익 사업 없이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 재판은 7월 16일 오후 2시 천안지원 301호에서 속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