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청춘 발 0시 50분, 중동을 만나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청춘 발 0시 50분, 중동을 만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80) 중동의 이야기를 듣는 ‘중동 부루-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6.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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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여름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 대전 중동의 작은 골목을 헤매다보면 ‘중동 부루-스’라는 플래카드를 달고 있는 아담한 건물을 만난다.

어쩌면 코끝에 맺힌 땀을 식혀줄 반가운 무언가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건물은 중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대전광역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이고 1층에 자리 잡은 중동 작은미술관에 들어서면 ‘중동 부루-스‘라고 이름붙인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먼저 초여름 햇빛을 피하기에도 작아 보이는 파라솔이 꽂힌 수레가 하나 눈에 띈다. 근래 중동 골목의 곳곳에 출몰해 한 잔의 냉커피와 몇 다발의 이야기꽃을 건네고 사라졌던, 이른바 ‘게릴라 대담’을 진행했던 수레다.

이 ‘중동 부루-스’ 수레는 ‘커-피’와 ‘중동 냉차’, 이 두 종류의 차를 싣고 청춘들과 함께 중동을 누비고 다녔다. 수레를 자세히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들려주세요’라고 적혀있다.

8명의 청년들이 사연 많은 중동에 들어와 수레를 끌고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음료를 나누고 수다를 떨었던 ‘중동 부루-스’는 ‘중동 돋보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기획으로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전시장 중앙에 수레가 있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다양한 색으로 삐죽삐죽, 들쑥날쑥 채워진 여러 장의 색칠공부 종이들이다.

또 영문도 말하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드릴과 작은 절구, 오래된 사진 액자 등의 물건들도 있다. 이런 것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천천히 벽면을 따라 걸으며 전시물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저절로 알 수 있다.

색칠된 그림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름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 있고, 책상 위의 물건들에는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처럼, 물건의 주인과 물건이 가진 소박한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철물점 할아버지가 몇 십 년간 사용해온 드릴, 이건 중동의 한 정미소 창고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키, 한 할머니의 꽃다운 시절을 담고 있는 사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고 있다. 백 년이 지난 후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서 만날지 모를 평범하지만 오래된 역사의 한 자락들이다.

냉차를 싣고 마을을 누비던 수레와 중동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색연필을 쥐고 색을 칠하고 정성스레 이름을 적은 종이들,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생활의 물건들은 중동의 이야기를 담기위해 모인 청년들이 반년 동안 모아온 이야기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올 초에 시작된 ‘중동 돋보기 프로젝트 2기’의 처음 두 달은 중동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친해지기 위한 활동으로 채워졌다. ‘커뮤니티 맵핑’이라는 시민참여형 지도 제작 기술을 통해 중동이라는 곳에 대한 인식을 다지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 후 6주간은 로컬 콘텐츠를 만드는 다른 지역의 전문가를 초청해 지역 아카이브를 왜 해야 하는지, 로컬 콘텐츠는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중동 부루-스’를 기획했고, 마침내 청년들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수레를 끌고 중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곳의 어르신들과 만나고 또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색칠하기는, 수레에 실린 시원한 마실 것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소통을 하기 위한 한 예시였다. 처음에는 뭐 이런 것을 다 하냐고 손사래 치던 어르신들도 나중에 벽에 전시된 자신의 그림을 보고는 아주 좋아하면서 전시가 끝나면 자신에게 돌려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청년활동지원팀의 오민희 씨는 수레를 끌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경계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러나 그 세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내놓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에요. 그래서 누군가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들 말해요. ‘대전 브루스’ 노래를 크게 틀고 수레를 끌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한 무리의 청년들에 대해 의심도 했죠. 그러나 차가운 커피 한 잔과 열심히 듣는 우리들의 자세에 봄눈 녹듯 허물어졌어요.”

‘중동 부루-스’는 대전 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청년들과 함께 진행한 두 번째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공식 명칭은 ‘중동 스토리텔링 발굴사업’으로 대전역 근처인 중동이 겪은 여러 변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냥 사라지게 둘 수 없어서 시작한 활동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동이라는 오래된 동네에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발굴하고 여러 형식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었다.

대전 중동은 옛 유곽 터를 비롯해 건어물 거리, 인쇄소 거리, 한의원 거리 등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 많은 이야기가 골목마다 얽혀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지역사회가 고령화되어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면서 쇠락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이야기들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곧 영영 잃어버리겠다는 아쉬움이 이 사업의 출발이었다.

‘중동 스토리텔링 발굴사업’의 첫발은 작년, 중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이야기들을 모아 ‘이 거리는 유산이다’라는 독립출간물을 제작하면서 여정을 시작하였다.

중동 곳곳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 중동에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꾸러미는 이번 ‘중동 돋보기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었다. 첫 단계가 관찰과 서술이었다면 이제는 제3자로서가 아닌 나와 너의 관계로,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함께 만들며 상호작용하는 단계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상반기를 채웠던 ‘중동 부루-스’ 다음으로 하반기에는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해프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청년 그룹들을 모아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공모 사업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밤의 골목길이 어둡다’는 문제를 발견했다고 한다면, 민원을 통해 가로등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주민들과 의논해 골목길 벽에 태양열로 빛을 낼 수 있는 등을 설치해보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공모를 통해 모색하는 거죠. 1기, 2기를 통해 공간과 친해지고, 공간의 이야기를 축적하면서 관계를 만들었다면 3기는 커뮤니티 내에서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청년들을 지원하고 같이 활동하는 오민희 씨는 이 사업의 목적은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주체적인 문화 기획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누고 또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등으로 점점 지역 간 경계가 사라져 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거시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절실하다. 이 사업은 이런 기회를 알려주는 제안의 하나라는 것이다.

청춘들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지역의 문제와 마주하는 문화기획자로서 자리 잡고 또 지역의 콘텐츠가 청춘의 미래를 담보하는 구체적인 표본이 될 날을 그려 보면서 중동에 한번 마실 나가볼 일이다.

‘중동 부루-스’ 전시는 곧 끝나더라도 중동에서 꿈틀대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항상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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