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굴욕 대신 ‘애꾸’를 택한 예술가의 자존심
[변상섭의 그림읽기] 굴욕 대신 ‘애꾸’를 택한 예술가의 자존심
최 북 作 ‘자화상’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7.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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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 作 ‘자화상’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덥수룩한 수염에 망건을 쓴 선비의 모습인데 자세히 보니 애꾸눈이다. 잘못 그렸을 리는 만무하고, 설령 애꾸눈이라도 온전히 그려 약점을 감추려 하는 게 인간 심리인데…

조선시대 광인(狂人) 화가로 정평이 나 있는 호생관(毫生館) 최북(생몰 미상)의 자화상이다. 메추리를 잘 그려 ‘최 메추리’, 북(北)자를 둘로 나눠 '칠칠(七七)이'로 불리는 등 숱한 별명과 광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화가다.

중인 출신이지만 시서화 삼절에 능했다. 두주불사였던 작가는 그림 한 점 팔아 술·밥을 해결하는 직업화가였다. 오죽했으면 호를 '붓(毫)으로 먹고 산다는(生) 뜻'인 호생관으로 했을까. 나라에서 금주령이 내려 술이 귀할 때 술이 고프면 상가를 돌며 헛 곡을 하고 술을 얻어 마셨을 정도다. 그 발상이 기발하다.

하지만 삶이 곤궁해도 비굴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는 엄격한 선비였다. 자존심과 기질이 대쪽 같았다.  애꾸눈이 된 사연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어느 날 탐탁지 않게 여기던 양반이 찾아와 그림 부탁을 하면서 솜씨를 트집 잡자 "네까짓 놈한테 그림을 그려주느니 차라리 장님으로 사는 게 낫다"며 필통에 있던 송곳을 꺼내 자신의 오른쪽 눈을 찔러 스스로 애꾸눈이 됐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굴욕보다는 고통을 택한 지조 높은 선비 화가다. 최북은 그때부터 애꾸눈이 되어 한쪽 눈에만 끼는 반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늘 그랬듯이 그림은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그림 값에 관계에 관계없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었다. 영혼까지 자유로웠던 최북은 그림 판 돈으로 기분 좋게 취한 후 한양 어느 골목길을 헤매다 눈 구덩이에 빠져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대쪽같이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산 최북을 광기로 자신의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와 견준다. 가당치도 않은 억지 춘향이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설령 최북의 삶이 광기의 점철로 이어졌다 해도 올곧게 산 예인이다. 붓 하나에 운명을 건 외줄타기 삶을 산 아웃사이더 화가였지만 서양의 어느 정신줄을 놓은 화가와 비교되는 것은 아마 최북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경제가 말이 아니다.

지방선거 끝이라 곳곳에서 정무직 자리를 놓고 눈치전과 줄대기가 빈번하다. 작금 우리사회의 일면만이 아니고 동서고금이 그렇고 그래왔을 것이다.

하지만 최북이 오늘의 번잡스런 모습을 본다면 눈꼴이 시어 나머지 한쪽 눈을 송곳으로 찔러 장님이 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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