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느림의 미학 청산도 라이딩 ④] 구들장 방식 ‘다랭이논’에서 배우는 지혜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느림의 미학 청산도 라이딩 ④] 구들장 방식 ‘다랭이논’에서 배우는 지혜
청산도의 농경제 낙수효과
  • 김형규
  • 승인 2018.07.07 13: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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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에서 장기미해변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전면의 산이 매봉산이다.
청산도 남쪽 해안은 경관이 수려해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우가 많다.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범바위 전망대에서 내려와 장기미해변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잔디가 폭신하게 밟히는 흙길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금세 깎아지르는 돌계단이 우리를 기다렸다.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메고 내려가야 한다. 노약자에게는 쉽지 않은 코스다. 전면에 병풍처럼 펼쳐진 매봉산과 푸른 바다가 아니라면 여기에 올 이유가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건너편 매봉산을 비롯한 청산도의 섬을 오르고 싶다.

보적산과 매봉산 사이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계곡수가 장기미해변을 적시더니 바다로 스며들었다. 장기미해변은 공룡알해변으로도 불린다. 해변을 이루는 돌이 공룡알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의 큰 몽돌은 범바위처럼 자성을 가져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기미해변에서 내륙쪽으로 우회전하면 곧바로 계단식 농경지가 펼쳐진다. 두 개의 산 틈에 형성된 논이라서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경사가 심하다.

청산도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농경지를 확장할 묘안 찾기에 몰두했다. 평지의 농지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었다. 비탈진 산악 지대까지 평평하게 개간해 농경지로 바꿔놓는 일이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손바닥 크기나마 산비탈 황무지를 한층 한층 평평한 계단식으로 개간하는 다랭이논(다랑논)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경사가 심한 지대의 흙을 무너지지 않게 콘크리트처럼 고정시키는 게 문제였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내리는 우기에는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게 뻔했다. 이곳 농민들은 해법을 구들장에서 찾았다. 논 가장자리를 구들장과 같은 돌로 촘촘하게 쌓아올려 옹벽처럼 지지하고 아랫 논도 똑같은 방식으로 잇대어 무너지는 사태를 막았다. 단순히 돌만 쌓는 게 아니라 맨 아래에 구들장으로 하부석축을 쌓으면서 통수로를 확보하고 그 위에 작은 돌과 흙의 혼합토층을 깔고 생육토층을 덮는 지혜를 발휘했다. 구들장 다랑논은 농업용수의 활용도를 높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맨 위 다랑논에 받아두었다가 자연스레 아래 다랑논으로 흘러내려가도록 했다. 물의 흐름이 원활하도록 통수로를 따로 뚫어 아랫논을 배려했다. 논농사만의 낙수효과런가.

보적산과 매봉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장기미해변으로 흘러가고 있다.
장기미해변에 탐방객을 위해 놓인 징검다리.

다랭이논을 빠져나오자 조금 전 범바위로 갈라지는 3거리 도로가 나왔다. 청산도항 방면 도로를 따라 좌회전해 달리면 섬 일주를 완성한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겼다. 오전에 봐뒀던 항구 너머 지리해수욕장 민박집으로 향했다. 청산도에서 가장 핫한 곳은 항구 주변이다. 어시장과 식당이 많고 인근에 각종 영화‧드라마 촬영지가 집중돼 인파가 더욱 몰린다. 오늘 라이딩은 여기서 접고 내일 오전에 서편제촬영지 등을 둘러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예약한 민박집은 지리해수욕장 막다른 곳에 위치한 2층 민가였다. 오전에 방값을 치르고 다음날 아침 전복죽 값으로 1인당 만원씩을 더 얹어주자 주인 아주머니는 “이따 저녁은 딴 데 가서 자실 것 없이 여기 와서 드시오. 우리집 김치 하나랑 먹어도 맛 있으니께”하고 호의를 베풀었다.

청산도 다랑이논. 측면에 석축을 쌓아 농지를 평평하게 하고 토사유출을 방지했다.
구들장논 통수로.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한 낯선 저녁 상차림.

민박 치고는 침대까지 갖춘 집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잠깐만 기다리시오. 뻘에 나가서 먹을 거 없나 찾아보고 올테니께. 저녁은 배고프더라도 7시까지만 참으시오잉”하고는 망태기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사라졌다.

저녁상은 어스름한 7시를 넘겼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저녁밥 준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겠지’하고 주인집 부엌의 동태에 귀를 기울이는데 30분이 더 지나서야 “에고, 차린 것도 없는디 늦어부렀네”하며 아주머니가 밥상을 들이밀었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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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7-10 23:50:30
아 시골 저녁 밥상 ~~. 정말 한국적 시골내음이 물씬 겨나오네요. 사진 한장에서

진교영 2018-07-10 11:30:00
다랭이논은 과학입니다 ^^
양은쟁반에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음식 사진에서 여행기에 진수가 느껴지네요

아 먹고잡다 시골 토속 엄니 집밥 ~~~

kusenb 2018-07-10 10:25:01
진정한 낙수효과네요...ㅎㅎㅎㅎ

청산에 살어리랏다 2018-07-09 14:09:16
민박집 인심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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