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설탕이 녹는 동안 문학을 만나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설탕이 녹는 동안 문학을 만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82) - 2018 대전문학관의 두 번 째 젊은 작가전, ‘설탕이 녹는 시간’-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7.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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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지난 7월 13일, 대전 동구 용전동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대전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기획전시 ‘설탕이 녹는 시간’의 개막식이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한 구절을 따 이름 붙인 이 전시는 대전문학관이 기획한 두 번째 젊은 작가전으로 등단 10년 미만, 50세 미만의 신진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의 특징은 독특한 주제를 잡아 이를 바탕으로 전체를 구성하고 개성적으로 배치해 작가들의 문학적 사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시 주제이자 제목인 ‘설탕이 녹는 시간’은 설탕물을 얻기 위한 기다림의 과정을 정의한 베르그송의 사유에서 비롯한다. 설탕이 물에 녹는 과정은 단순히 도식적인 이해나 물리적 시간만으로는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성하는 움직임 자체이며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창조적 형태로 지속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여기서 관찰할 수 있는 창조적 변화를 뼈대로 선정된 다섯 명의 작가들을 관통하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그들의 작품 안에는 세계를 향해 던진 새로운 시선과 이것으로 시작되는 내면의 변화를 찾아볼 시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이 가득 찬 투명한 수조가 눈에 들어온다. 관람객은 수조 안에 직접 설탕을 부어 녹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을 글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설탕이 녹는 과정을 지켜보며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외에도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설탕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사이사이에 전시의 주제와 그 의미를 상기시킨다.

단순히 시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주제를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품들과 시를 함께 전시함으로써 일반적인 문학전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있다.

이번 젊은 작가전에 선정된 다섯 명의 작가는 김채운, 박송이, 변선우, 유하정, 한상철 작가로, 모두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이다. 개막식에서 이 중 네 명의 작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소소한 것들에 가 닿는 시선을 시에 담아내고 싶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채운 시인은 아픈 곳에 손이 가듯 작은 것에 마음이 쓰이고 눈에 밟힌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 역시 결국 소외된 것들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주고 보듬어 그 편이 되어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앞으로 자신의 시는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시인은 자신의 틀을 깨고 아직 용기가 없어서 표출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시를 쓰는 일을 할 것이라며 웃는다. 늘 막연한 두려움에 울타리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가도 금세 집어넣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조금 더 파격적인, 팜므파탈 같은 시를 써볼 생각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제 삶의 터전이었음에도 대전이란 공간이 시에 많이 스며들지 못했다는 점에 미안함이 있어요. 시선을 자꾸 먼 곳으로만 돌려서 찾으려 했어요.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앞으로는 더 노력해야죠.”

시와 대전이라는 지역성을 묻는 질문에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시장 한구석엔 정체모를 소품들과 함께 짧지 않은 시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시인 변선우의 전시이다. 선정된 작가들 중 가장 젊은 시인인 그는 올해 등단했으며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다. 취업을 생각하며 대학4학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젊은 교수의 시 수업을 듣고 시를 전공하며 대학원에 진학했고 등단에까지 이른 것이다.

자신이 가진 시의 특징은 공간의 이동이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바로 시가 가진 지역성과도 연결하고 있다. 의식주의 영역은 시적 공간과 뗄 수 없으며 그렇기에 시는 다시 생존의 문제와도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젊은 만큼 꾸준히 시를 써 얼른 첫 시집을 내고 싶다며 웃었다.

학부시절 시를 공부했지만 오랜 시간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한상철 시인은 이 과정을 회귀라고 표현한다. 비평도 결국 누군가의 말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던 그가 다시 시로 돌아온 계기가 궁금했다.

“말이나 글 속에 쉽게 담기지 않는 어떤 것이 제 안에 생겼어요. 말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억과 감정들, 이를테면 아픔이나 상처 같은 내 안에 숨어있던 말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은 것이 시랄까요.”

시인은 시 속에 담담하게 대전을 담아내고 있다. 그가 학창시절과 희로애락을 담은 인생을 겪어낸 이 공간은 작은 성당 옆의 골목길이나 지나가는 계절의 무늬로 시 속에 남는다. 단지 지명이나 건물, 사람으로 구체화되지 않을 뿐, 작품 속에는 대전이라는 삶의 공간이 배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 벽 한 켠은 밝고 재미있는 그림들로 가득하다. 유하정 작가의 동시와 삽화들이다. 이번 젊은 작가전의 유일한 동시 작가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늘 시를 끄적였다고 말한다.

“항상 어린아이의 씨앗을 품고 있는 시라고는 생각했어요.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동시로 피어나 있지 뭐예요. 사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동시를 써야지,라는 마음보다는 스스로를 위해서 썼던 시들이지만요. 그러다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족사진’이라는 제 시를 읽어준 적이 있어요. 근데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시에서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이 너무 잘 느껴졌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아이들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문학을 느끼는지, 또 문학이 근본적으로 치유의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요.”

김채운
변선우
한상철
유하정
김지숙(운영팀)

아동문학이 아동문학의 장에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전시를 하는 일 자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일이라며 작가는 말을 맺는다.

지역의 원로, 중진작가들이 대외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편임에 반해 신진작가들의 지역 내 활동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전문학관에서 젊은 작가전을 기획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현실에 집중한 것이다. 대전문학관 또한 개관 이후로 원로작가와 중진작가들에 집중했던 사업과 함께 대전의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진작가들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작년에 열었던 첫 젊은 작가전 기획전시를 보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대전에도 이렇게 독특한 작가들이 톡톡 튀는 상상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게 되어 즐거웠다고요. 그래서 뿌듯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도 대전에서 활동하는 좋은 작가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입니다.”

대전문학과 운영팀의 김지숙 씨는 앞으로 이어질 전시에도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전의 젊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젊은 작가전 ‘설탕이 녹는 시간’은 10월까지 이어진다. 마음의 갈증이 느껴지는 어느 아침이면 용전동에 있는 문학 전시를 만나러 나서볼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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