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기자의 눈] 상(床)과 상(想)
    [시민기자의 눈] 상(床)과 상(想)
    • 홍경석
    • 승인 2018.07.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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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홍경석 시민기자]

     

    홍경석 시민기자

    - <가장 받고 싶은 상> 우덕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슬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전략)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 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전략)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상)” -

    2년 전 전라북도 교육청이 주최한 <2016 글쓰기 너도나도 공모전> 동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슬 양의 글(시)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한 편의 시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온라인 공간까지 울음바다로 적셨다.

    필자 또한 이 글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았던 임미성 익산성당초등교 교감 선생님은 “이 동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 세 명이 작품을 고를 때 역시도 만장일치로 가장 좋은 작품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이제는 중학교 2학년이 됐을 이 양이 만인의 마음까지 다독이는 훌륭한 문인이 되길 응원한다. 이 양의 어머니가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 필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가출한 경우에 해당한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건 필자의 생후 첫 돌 무렵이었다고 들었다. 사진 한 장조차 남겨놓지 않았기에 60년이 다 되는 지금껏 역시도 어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는 천사, 그 이상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한다면 아이는 금세 지옥의 구렁텅이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엄마 없는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비록 엄마는 없지만 공부만큼은 누구에게든 지지 않겠노라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1~4학년 1학기까지는 부동의 1등으로 독주했다. 그해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를 맞아 등교했다. 예쁘장한 여자아이 하나가 전학을 왔다며 선생님이 인사를 시켰다.

    한데 그 급우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당월 치른 시험에서 필자를 제치고 당당히 1등으로 올라서는 게 아닌가! 그건 실로 충격이었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 달엔 반드시!’. 하지만 이후론 아무리 노력을 쏟았음에도 도무지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필자와는 출발선부터 다른 소위 ‘금수저’ 출신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교육자였고 아주 부자이기까지 했다. 거기서 느꼈던 좌절감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 하고 소년가장으로 나서야 했던 필자와 달리 그녀는 진학을 계속했다.

    그도 모자라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얘길 전해들은 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할 당시였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은커녕 만날 술로만 사셨던 홀아버지를 대신하여 밥상까지 챙기곤 돈을 벌러 나가야 했던 풍상의 지난날이 선연하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필자도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보았다. 벌어놓은 건 쥐뿔도 없었지만 아이들의 교육 장르에서만큼은 ‘부자’가 되기로 작심했다. 맹모삼천지교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지극정성을 쏟았다.

    덕분에 딸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아들은 자타공인 최고의 기업에서 중간간부로까지 성장했다. 내년이면 회갑을 맞는다. 며칠 전 집에 온 아들은 딸과 부담하여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당초 해외여행을 권했지만 건강이 안 좋은 아내로 인해 사양한 바 있다. 그러나 제주도만큼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인지라 호기심이 발동하기에 승낙했다. 아들과 딸이 모두 결혼해 타지에서 산다.

    따라서 며느리와 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순 없다. 다만 희망사항이라면 아들과 딸 내외가 지금 그대로, ‘처음처럼’ 사랑하고 아끼면서 잘 살기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상(床), 아니 상(想)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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