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글 읽기에 꾀병 난 선비들의 일탈(?)
[변상섭의 그림읽기] 글 읽기에 꾀병 난 선비들의 일탈(?)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8.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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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현이도’ (18세기, 간송미술관)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여름날 소나무 그늘 아래서 선비 여럿이 장기를 두고 있다. 벼락이 쳐도 모를 기세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 내용이 딱 이 모습일 것이다. 한낮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장기를 두는 것도 그시절 피서 법이 아니던가. 에어콘 사용이 생활화된 요즘이다. 격세지감에 딱 어울리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 장르를 연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현이도(賢已圖·18세기)’다. 감상의 백미는 장기 삼매경에 빠진 여섯 인물의 표정을 음미하는 것이다. 죽은 말이 수북이 쌓여 있고 장기판에 남은 말은 몇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장기는 막바지에 다다른 듯하다. 장기를 두는 선비 표정에서도 읽혀진다. 쪼그려 앉아 갓끈을 만지작거리던 선비가 말을 옮기며 장을 친 모양이다. 승리를 확신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설 기세다. 

반면 낙천건을 쓴 상대방 선비는 죽은 장기 알만 매만지며 난감해한다. 외통수에 속수무책인 표정이다. 바로 옆에 탕건을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다. 댕기머리 총각은 벌떡 일어나 엉뚱하게 헛부채질을 하면서 훈수를 할 태세다.

그리고 뒤쪽에 갓 쓴 선비는 복기를 하는지, 아니면 아직 수를 읽지 못한 탓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더위에 지쳐 글 읽기에 꾀병이 난 선비들의 일탈이 마치 희극의 한 장면 같다.

공자도 선비들의 장기놀이를 은근 슬쩍 거든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딱한 일이다. 그럴 바엔 장기라도 두는 것이 현명하다(爲之猶賢乎已)’고 했다. 현이도란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화기(畵記)에 밝힌 내력도 흥미롭다. 글자가 훼손됐지만 뜻은 대강 이렇다. 성중(成仲)이 중국의 팔준도(팔준마를 그린 그림) 2점을 가져와 현이도를 그려 달라고 부탁해, 왕희지가 거위 한마리 대신 경서를 써준 것이 생각나 흔쾌히 그려 주었다는 내용이다. 성중은 당대 최고 그림 수장가였던 김광수다. 거래의 득실은 섣불리 따질 게 못 된다. 그림이 담고 있는 얘깃거리가 많아 보는 재미를 더해주니 후대한테는 남는 장사가 아닌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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