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네 남녀의 사랑 속에 비친 우리 자화상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네 남녀의 사랑 속에 비친 우리 자화상
    (1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08.04 13: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2년 출판된 책이다. 도대체 무슨 제목이 이렇게 철학적인가? 혹 역자가 잘못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었다. 20세기 최고의 작가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1929~  )는 자기가 지은 다른 책에서도 이 제목을 언급했다. 삶의 본질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난해하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통속적이지 않다. 가볍지 않은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도 있고 철학도 있고 역사와 정치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다룬다.

    네 명이 주인공이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토마스가 테레사와 사비나, 프란츠가 사비나와 연애한다. 캐릭터를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나눈다면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볍고,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겁다. 읽은 후 머릿속 여운이 남는 것은 토마시와 테레자이다. 한 가지 더 하면 테레자가 키우는 카레닌이라는 개가 있다. 사랑이라는 담론에서 동물인 개를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데카르트와 니체는 관점이 다르다.

    첫 문장은 어렵게 시작한다. 니체의 영원회귀설(永遠回歸說)이 등장한다. 니체는 하루하루가 다시 그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무겁게 진실하게 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삶이 정말 영원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사실 우리의 삶은 원이 아닌 직선으로 생각하면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되지 않은 채, 우연 아니면 운명으로 찾아오고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다.

    토마시는 영혼보다는 육체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다. 이 여자 저 여자 마음 두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즐긴다. 토마시는 치마만 두르면 잠재적 연애 대상이다. 그는 사비나도 연인이고 테레사도 연인이다. 그러나 사비나는 테레자가 등장하면서 헤어진다. 테레자는 육체보다는 영혼의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어느 날 시골에 출장 온 점잖은 의사가 테레자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온다. 그 남자의 손에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있었다. 테레자는 이 사람은 다른 남자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연락처를 나누고 얼마 후 테레자는 토마시를 찾아 프라하로 온다. 그녀의 손에 물론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초인종을 누른다.

    토마시는 처음에는 뒷감당이 두려워 부담스러웠다. 독신일 경우에만 자신답다고 생각한 그지만 운명처럼 이 여자만큼은 연민을 느끼고 조금씩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때부터 토마시는 가벼운 세계에서 무거운 세계로 살짝 넘어간다. 테레자는 특별한 용건 때문에 왔다가 우연히 들렸다고 강조했으나 엄청나게 큰 트렁크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면 새로운 사람과 세상을 보기 위하여 완전히 온 것이다.

    토마시는 이제 처음으로 순수한 연애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와 섹스를 나눈 무수한 여자 중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에로틱한 우정.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고, 쿨 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그다. 밀란 쿤데라의 표현대로 그녀는 강보에 쌓여 강물에 떠내려 온 불쌍한 아이처럼 토마시에게 우연히 온 것이다. 사랑은 대개 처음에는 연민으로 시작한다.

    이제 토마시가 과거와 다르게 변화가 시작된다. 프라하의 봄 때 구 소련이 쳐들어 왔다.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스위스로 떠난다. 거기서도 아직 토마시는 돈 후안 같은 기질이 죽지 않았다. 실망한 테레자는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고 혼자 있을 그녀를 떠올리고 안쓰러워한다. 결국 그는 사표를 내고 프라하로 돌아올 생각을 갖는다. 프라하로 떠나겠다고 말하자 병원장은 걱정한다. 소련 침공시절, 프라하에서 토마시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가지고 기고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은 모르고 저지른 잘못이지만 죄를 뉘우쳐 눈을 찔렀듯이 결과를 야기한 자는 책임있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적 의도 없이 썼지만, 때가 때인지라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현 정치체제를 비난한 격이 되었고 하루아침에 민주투사가 되었다.

    그는 “그래야만 한다.”라고 무거움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이내 베토벤의 행진곡을 연상하면서 “정말, 그래야만 할까” 다시 방황한다. 대개의 먹물들이 하는 행태이다. 토마시가 돌아오자  테레자가 좋아한다. 테레자의 코 고는 소리에 순간 내가 잘못 온 것인가 다시 분심이 들었다. 프라하에서 토마시의 민주화 운동하는 아들이 찾아와 반체제 인사 석방을 위해 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혼으로 헤어진 자식과 화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사실 테레자는 일하는 곳에 비밀경찰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손을 떨었다. 그는 그녀를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서명을 하면 탄압이 심해질 것이고 그녀가 더 힘들어할 것이다.

    테레자가 시골로 내려가자고 하자 그도 동의했다. 그곳에서 그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정비공으로, 트럭 운전사로 살아간다. 이제 그는 그녀의 꿈속에서 본 총에 쫓기는 작은 토끼에 불과하다. 한없이 작아진 토마시. 밀란 쿤데라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보잘것없이 늙어가는 그에게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자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이 남자를 위해서 함께 춤추러 가자고 한다. 둘은 행복해한다. 해피엔딩이다. 영혼을 사랑한 여자, 그 여자에게 정말 그런 날이 왔으나 토끼만큼 작아진 남자의 모습이 슬펐다. 저자는 형식은 슬프나 내용은 행복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사랑. 사비나는 가벼운 토마시가 좋았다. 그의 솔직함. 그녀는 토마시처럼 육체 이외 영혼이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비나를 좋아한 사람은 프란츠이다. 스위스 사람인 그는 20대에 교수가 되어서 안정적이고 보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질곡의 역사를 살고 있는 사비나를 사랑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체코는 소련의 침공으로 위태로운 지경이다. 그는 체코의 정치상황에서 볼 수 있는 혁명이니 시위니 하는 묵직한 세계를 동경했다. 사비나와 프란츠는 존재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이 달랐다. 사비나는 자기를 위해 이혼한 프란츠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의 곁을 떠난다. 프란츠에게 일생을 건 사랑이 사비나에게는 ‘썸’이었다. 사비나는 후에 토마시의 아들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그 속에서 사고로 죽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행복한 두 사람을 발견하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읽는 독자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브론스키 두 사람의 사랑만 기억하듯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만 기억해도 좋다. 몇 번이고 읽어야 하나하나 더 볼 수 있다. 어느 젊은 친구는 연인과 헤어지고 다섯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시절, 네 남녀들의 사랑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 것이 옳은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르다. 밀란 쿤데라는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 읽으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쯧쯧쯧 2018-08-23 02:42:28
    임영호님. '강보에 쌓여 강물에 떠내려 온 불쌍한 아이'라구요?

    보자기에 싸는 걸까요, 쌓는 걸까요.
    그럼 강보에는 싸는 걸까요, 쌓는 걸까요.
    그렇다면 베일에는 싸여 있을까요, 쌓여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