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가야산 국유지 ‘역사유적공원’으로 활용하자
[시민기자의 눈] 가야산 국유지 ‘역사유적공원’으로 활용하자
  •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 승인 2018.08.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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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떠난 상가리 간주석

[굿모닝충청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폐사지에서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오면서 나뒹굴고 있는 게 초석이다.

초석은 기둥의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을 말한다.

최근 남연군묘가 있는 가야사지에서 경작하는 과정에서 초석이 발견됐다.

트렉터 작업에 걸림돌이 되자 땅속에서 꺼내 밭뚝으로 밀어둔 것이다.

초석을 역사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관리했으면 한다.

초석이 들판에 버려지듯 남겨졌지만 제 자리를 지킨다면 배열, 초석 간의 거리 등으로 당시의 건물 규모와 모양을 추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 가야사 역사와의 연결 끈이 돼 그 가치는 무한하게 느껴진다.

가야산의 문화자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가야산의 남연군묘는 가야사지가 된다.

흥선대원군이 남연군묘를 면례하며 가야사는 폐사하게 된다.

마을 전체가 사역으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발굴을 통해 소조불상 및 가야사 사역임을 알 수 있는 명문 기와 등 발굴 성과가 있었으나 유적은 대부분 공주나 부여의 박물관으로 보내져 주민들이 아쉬워한다.

발굴된 유적과 밝혀진 역사적인 이야기와 유적을 지역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면 한다.

지난주 현장을 둘러본 주민들은 “가야사지 밭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초석은 역사 교육현장은 물론 관광자원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석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건축물의 기초공사에 활용했던 주춧돌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건축물의 배치와 규모를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장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산군은 2012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가야사지 발굴 사업을 하며 1000여점 가까이 가야사지의 다양한 석조 유적을 발굴했음에도 예산상의 이유로 재성토하거나 활용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탐방객이 남연군묘와 가야사지를 찾고 있지만 유물이나 역사적인 배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가야사지 여기저기에 흩어진 석조 유적이라도 우선 찾아 한 곳에 모아 야외에 전시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공주와 부여의 야외전시장 문화재 안내판과 그 내력을 보면, 가야사지와 같은 방식으로 발굴 후 보내지거나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전국 각지에서 ‘징발’해 조선총독부박물관을 빛내기 위해 긁어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국외든 국내든 합법을 가장한 문화재의 외지 유출은 다른 의미에서 약탈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야사지에 내포역사유적공원을 세웠으면…

더 이상 가야산을 떠난 석조물을 타지의 학교와 국립박물관 뜰에다가 세워놓을 수는 없다.

물론 이런 주장에 박물관 측은 “현지에 박물관이 없어 도난의 위험이 있거나 유물을 보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저런 논리는 과거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피식민지 국가의 약탈 문화재 돌려주지 않으려는 반대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내포와 예산지역 특히 가야산과 삽교천 유역에서 청동기와 백제시대 유적이 땅만 파면 쏟아져 나온다.

가야산의 경우 산 전체가 불교문화재의 보고로 발굴해 가야산이 품고 있는 역사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내포와 예산지역의 박물관은 물론이고 변변한 유적공원조차 없자 유물은 외지로 반출되고 있다.

충남도청이 내포로 이전되고 지역에서는 문화 향유권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역사유적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특정지역은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지가 상승으로 개발비용이 높아지는 등 다양한 이유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접근성. 사업성과 국유지의 활용에서 덕산 가야사지라는 대안을 찾을 수 있겠다.

가야사지 일원은 대부분 국유지로 그 면적은 5만㎡ 이상의 넓은 면적이다.

또 하나의 호재로 올 3월 흥선대원군의 4대손인 이청 씨가 남연군묘를 포함한 상가리 산5-28번지 5950㎡와 산5-29번지 1만 6042㎡를 예산군에 무상 기증했다.

이 부지는 2필지로 2만 1992㎡이며 남연군묘를 비롯한 왕실 문화재 관리를 부탁하며 무상기증 예산군에 기부한 것이다.

기존 국유지와 이번에 기증받은 8만여㎡ 토지 일원에 내포지역의 역사유적공원화하는 방안을 지역사회가 고민했으면 한다.

가야산의 상가리는 등산객과 탐방객의 방문이 한 때 45만 명 이상 찾던 곳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역사 탐방지와 일반인들의 풍수 체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석 등 유적의 매장 가능성이 높고 초석 등 석조 유적이 다수 발견되는 곳은 남연군묘를 비롯해 과거 가야사라는 내포 최고 규모의 절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마을 중심에 있어 가야산내 폐사지의 석조 유적을 한 곳에 모으고 해설 안내판을 세우면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근사한 야외 미술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유지 지역을 위해 활용하자

마을 주민 박모(55) 씨는 “2012년부터 가야사지를 발굴하며 석조 유적이 발견되는데 해설 안내판을 세우고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우리 지역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들은 ▲가야사지 인근 주민들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 ▲가야사지 추정 지역 전체를 즉시 경작 금지하고 사유지는 매수 후 장기 발굴 계획 수립 ▲가야시지에 내포역사유적공원화 등을 덧붙인다.

가야산의 문화재는 지켜져야 하지만 보존과 활용의 목적은 해당 지역 주민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어야한다.

문화재가 주민들과 함께 사는 길은 첫째도 둘째도 활용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활용 권리를 줘야하며, 발굴 단계부터 보존인지 활용인지 분명히 하고 규제 위주의 권위적인 문화재위의 행정과 정책은 변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시스템을 재편하고, 무엇보다 주민의 참여를 높여야 하고 지역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재 발굴 후 그 터에 야외전시장 등 박물관을 세우고 주변 덕산 전통시장, 덕산온천 및 수덕사, 해미 읍성 등과 연계해 주민 스스로가 사업의 중심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가야사지 발굴 지역의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인접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면서 “백제사를 복원하고 가야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진면목을 활용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동안 국유지는 도립공원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각종 규제로 주민들의 발목을 잡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한 때는 지역 개발의 발목을 잡았던 국유지가 쇄락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45년간 엄청난 불편을 참아온 공원지역 시민들을 위해 행정. 의회 그리고 지역 사회가 방치된 국유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초석이란?

초석은 돌의 가공 여부에 따라 자연 상태의 돌을 사용하는 막돌 초석과 다듬돌 초석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막돌 초석은 울퉁불퉁한 윗면을 다듬지 않고 그 위에 놓이는 기둥의 밑면을 여기에 맞춘다. 조선시대 많은 건축물이 이 방법을 썼다. 

다듬돌 초석은 주좌(기둥이 놓이는 자리)의 형태에 따라 원형 초석·방형 초석·8각형 초석으로 나누어지고, 초석의 높이에 따라 원주형·방주형 초석으로 나누어진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초석은 대부분 원형 초석이나 방형 초석이다. 원주형, 방주형 초석은 정자·누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초석은 건물이 없어진 경우에도 남아 있는 초석의 배열, 초석 간의 거리 등으로 당시의 건물 모양을 추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또 건물의 세부적인 의장으로서도 기능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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