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이야기] 사지가 멀쩡한데 일을 안 한다고!
[복지이야기] 사지가 멀쩡한데 일을 안 한다고!
  • 김세원
  • 승인 2018.08.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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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굿모닝충청 김세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일 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은 17세기 영국의 탐험가 존 스미스가 식민지를 건설할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 기원은 성경으로, 데살로니가 후서(後書)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예수 재림에 대한 기대가 지나쳐 일을 게을리 하자 바울이 이를 경계하기 위한 취지로 그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이 말은 레닌에게 와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그는 자본가들을 겨냥해 “노동이 사회 이윤의 원천이 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을 구매할 뿐이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대접받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은 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을 포기하는 것으로 평가됐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숭상하며 자라난 세대들에게 있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죄악’에 속했다. 또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하고, 야간 근무는 물론이고 휴일이나 공휴일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면 ‘뭘 해도 될 사람’, ‘무슨 일이든 맡겨도 될 인물’, ‘공직자로는 제 격’이라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유럽에서도 태만, 나태, 일하지 않음은 죄로 취급되었다. 7가지 죄악에는 자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허영, 육욕 등이 포함되었다. 열심히 일 하려는 마음이 없고 게으른 것도 사회를 해치는 중대한 범죄로 본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영국 복지를 설계한 베버리지도 1942년 ‘사회보험 및 관련서비스: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에서 결핍(빈곤)·질병·무지·불결·나태를 5대 악(evils)으로 꼽았다. 요즘 말로 표현해보면 부정의의 싹을 자르고, 적폐를 해소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우선적으로 없애야 할 대상들이었다.

베버리지는 국가의 세금으로 국민들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생애 전 과정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범위와 한계, 방법 등을 어느 정도 제시한 셈이다. 그렇지만 베버리지의 장대하고 획기적인 사회보장계획에는 3백년 이상 이어진 영국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해결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녹아 있음 역시 간과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구빈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야기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핍박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토대를 닦은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인 1601년 구빈법(救貧法)이 시행된다. 빈곤을 해소하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빈민들을 구제하거나 빈곤 해소를 위한 관련사업에 처음으로 세금이 사용 된 것이다. 세금은 구빈세라는 이름으로 부과되었다.

구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영국이 이 법을 제정한 속내는 부랑자들의 준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곡식을 재배하는 것보다 양을 키워 그 털을 판매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지주들의 재빠른 움직임과 붕괴되는 농노제도로 부랑자들이 큰 폭으로 늘어났고, 이는 위정자들에게 큰 걱정거리였다. 신분도 모르는 수상한 무리들이 집단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통치자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요인이었다.

구빈법은 노동능력이 있는 자에게 작업장(Workhouse)에서 일할 것을 강제 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았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작업장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면 감옥으로 보내졌다.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이나 병자·노령자·맹인·농아·정신이상자·어린 아이 등은 빈민 감독관의 허락 하에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부모가 없거나 버려진 아이들은 선술집 등에서 경매에 붙여져 남자는 도제살이를 해야했고, 여자는 하녀로 보내졌다.

말은 구빈이었지만 통치자들의 고민을 해소하고 자본가들의 탐욕을 해소하는데 일조한 법이기도 하다. 물론 구빈법은 빈곤의 책임이 국가에 있고. 그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했으며, 법의 실행을 위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의 치안판사·교구의 빈민 감독관까지 통일적 구제행정기구를 설치했다는 데서 복지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834년 영국에서는 또 다른 구빈법이 제정되는 데 바로 신 구빈법이다. 새로운 구빈법이 만들어진 주 된 이유 중 하나는 구빈법으로 인한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결과 노동능력이 있건 없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장애유무와 상관없이, 나이를 불문하고 구빈원에 수용되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런 정치 경제 사회적 반성속에서 탄생한 것이 베버리지의 복지다. 

영국이 복지국가를 표방한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영국병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IMF의 금융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영국은 여전히 국민의 복지를 중요시 하는 복지국가며 세금으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노동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일 하지 않는 것도 권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노동능력은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자 선정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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