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금지된 사랑의 후유증, 헛웃음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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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게르스틀 作 ‘웃는 자화상’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8.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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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게르스틀 (1883-1908) 웃는 자화상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표정. 휑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예 정신 줄을 놓아버린 표정이다. 실연의 충격 탓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섬뜩하다. 모습은 헐랭이 같지만 실연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다고 하니 죽음의 그림자가 이런 게 아닐까.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의 ‘웃는 자화상’에 얽힌 얘기다. 실제 게르스틀은 ‘웃는 자화상’을 마지막으로 남긴 후 스물 다섯에 자살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성격이 유별났다고 한다. 중도에 학교도 중단했다니 문제학생이 분명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했고 개인교습과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혼자여서 고독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불행의 씨앗은 천재 음악가 쇤베르크와의 만남이다. 그와 가까워지면서 집으로 초대를 받고 그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초상화도 그려주었다. 문제는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드와의 불륜이다.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남편에게 지쳐 있던 부인은 스물세 살의 청년화가를 만나면서 엉뚱한 감정이 발동한다. 둘은 비엔나 숲 속으로 도피하여 한동안 애정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게르스틀과의 애정이 식어가면서 마틸드는 자녀들이 눈에 밟혔다. 괴팍한 남편은 버릴 수 있지만 자식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죽고 못살던 게르스틀과의 관계도 차츰 멀어지고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마틸드가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사랑의 도피행각은 막을 내리지만 게르스틀에게는 불행의 시작이다. 마틸드는 그렇지만 게르스틀은 봄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금지된 사랑의 후유증은 의외로 컸다. 허망함과 고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슬픔과 좌절감이 온몸을 짓눌러 정신적 피폐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린 그림이 ‘웃는 자화상’이다. 절망감에 무심코 나오는 헛웃음이 바로 그 표정이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직무대리

1년여 간 사랑의 아픔을 인내하던 게르스틀은 마침내 아틀리에에 불을 지른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웃는 자화상’을 남겼다. ‘웃는 자화상’은 마틸드에 대한 무한애정 표현이자 다시 돌아와 달라는 애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게르스틀의 또 다른 자화상 ‘파란색 배경의 반신 누드’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틸드는 게르스틀이 자살한 뒤 20년을, 그리고 쇤베르크는 40년을 더 살았다.

죽음까지 몰고 간 불꽃같은 사랑도 자신의 몫이다. 게르스틀의 죽음이 헛된 거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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