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소리의 마술사, ‘음악가(musician)’
역사 속 소리의 마술사, ‘음악가(musician)’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8.08.1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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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교육사랑신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활용교육의 일환으로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을 총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직업과 생애를 통해 오늘을 사는 학생·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진로와 직업의 세계를 풍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열한 번째 주제는 ‘뮤지션(musician)’입니다. 우리 역사 속에는 어떤 위대한 음악가가 있었고, 음악 예술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학생기자들과 함께 살펴봤습니다.<편집자 주>

 

역사 속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3대 악성(樂聖)은 신라의 우륵, 고구려의 왕산악, 조선의 박연이다. 사진 왼쪽부터 대가야박물관 앞 우륵 동상과 왕산악 초상, 충북 영동의 난계사에 안치된 박연 선생 부부 초상.

[굿모닝충청 권성하 기자] ‘음악가(musician)’는 소리의 마술사다. 음악을 창작하거나 소리 내거나 연주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작곡가, 성악가(SATB·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가수(Vocalist), 연주자, 지휘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뮤지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잡지 ‘소년’(1937년 7월호)에 실린 홍난파의 수필 ‘음악가가 되려면-성공의 길’은 곱씹어 읽을 만하다.

“여러분 중에 음악가가 되려는 분이 있다면 첫째는, 음악에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음악을 듣든지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상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곡조에 따라 각각 다른 흥미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귀를 가졌다더라도 한없이 깊은 취미를 갖지 않고는 음악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음악학교에서 4년 공부하면 누구나 음악가가 되는 줄 알아서는 큰 잘못입니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려면 자기의 재주를 충분히 생각하고, 선생들의 권고와 지도를 받아서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야 말겠다는 쇠보다 굳은 결심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원문 간추림)”

수십 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음(聽音)과 감수성, 꿈과 끼, 노력이 모두 절실해야 진정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다.

우륵이 만든 가야금은 풍류가야금, 산조가야금, 각종 개량가야금으로 형태가 발전했다. 사진은 국악극 '현의 노래' 중 한 장면.
거문고는 고구려의 악기다. 옛 사람들은 거문고를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고 불렀다. 사진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무용총 벽화에 묘사된 거문고 연주 모습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피나는 노력으로 악성(樂聖)의 반열에 오른 위인들이 많다. 우리 음악의 3대 악성으로 꼽히는 우륵과 왕산악, 박연이 대표적이다.

우륵은 가야 사람이다. 가야가 망한 뒤에는 신라 진흥왕 시절에 활동한 음악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가야 가실왕의 명으로 열두 달을 상징하는 12줄 가야금을 만들었고, ‘가야 12곡’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가야금은 안족(雁足·기러기발) 위에 음높이 순으로 얹은 줄을 맨손으로 뜯고 튕겨서 소리 내는 발현(撥絃·줄뜯음) 악기다. 중국의 정(箏), 일본의 고토(箏), 몽골의 야탁(Yatga), 베트남의 단짜인(Đan tranh) 등이 친척 악기다. 오늘날 가야금은 우륵이 만든 원래의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 다양한 줄의 개량가야금으로 형태가 발전했다.

‘삼국사기’에는 그(또는 가실왕)가 중국의 ‘쟁(箏)’을 참고해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는 했지만 가야금은 새로운 악기다. 가야금의 나무판은 위는 둥글고, 아래는 편평하다. 즉, 가야의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우륵이 작곡한 ‘가야 12곡(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달이, 사물, 물해, 하기물, 사자기, 거열, 사팔혜, 이사, 상기물)’은 대부분 가야 땅의 이름이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 낀 연맹체인 가야 제국을 한데 모으고, 통일된 왕국으로 키워보려 했던 가실왕과 우륵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신라 진흥왕대에 날개를 편다. 망해가는 가야를 떠나 신라에 귀순한 우륵은 비로소 마음껏 음악 세계를 펼쳤다. 또 계고, 법지, 만덕 등에게 연주법과 노래, 춤을 전수한 당대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왕산악은 고구려의 음악가다. ‘삼국사기’에는 중국 진나라가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냈고, 고구려의 부수상(第二相)인 왕산악이 새롭게 거문고를 만들어 100곡을 지어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산악이 거문고를 타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췄기 때문에 현학금(玄鶴琴)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후 현금으로 불렸다고 한다.

거문고는 통일신라시대에 가야금, 향비파와 함께 신라 3현의 하나로 정착된다.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대표적인 ‘향악기(우리 악기)’로 백악지장(百樂之丈)의 위치에 오른다.

책 ‘한국 음악의 거장들’은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우리 음악사에 아름다운 파동을 일으킨 음악 명인들의 풍류와 열정, 사랑을 담고 있다.

책 ‘한국 음악의 거장들’에는 거문고를 대하는 선비의 자세인 ‘오불탄(五不彈)’과 오능‘(五能)’이 나온다.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는 5가지 조건인 오불탄은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할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인 경우,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다. 대신 앉은 자세를 안정감있게 하고, 시선은 한 곳을 향하며, 생각은 한가롭게 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고, 지법(指法)을 견고히 하는 ‘오능’을 최고의 연주상태로 꼽았다.

박연(1378~1458)은 조선 세종 때의 음악가로 중국 순(舜)임금 시대의 유명한 음률가인 기(夔)에 비견되는 음악 천재다. 사실 박연은 벼슬이 대제학까지 오른 유능한 행정관료였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세종대왕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세종은 조선 초기 국가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애를 썼고, 각종 국가 행사에서 연주할 음악에서 답을 찾았다.

당시 궁중음악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향악과 당나라의 당악, 송나라 때 전해온 아악 등이 뒤섞여 있었다. 세종은 박연에게 이들 음악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도록 했고,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국가의 공식 음악을 송나라의 ‘아악’으로 규정한다.

책 ‘한국 음악의 거장들’은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우리 음악사에 아름다운 파동을 일으킨 음악 명인들의 풍류와 열정, 사랑을 담고 있다.

박연은 1426년(세종8년)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에 임명돼 향악, 당악, 아악의 율조를 조사하고, 악기의 그림과 악보를 한 권의 악서(樂書)에 담는 아악 정비에 돌입한다. 또 각종 악기의 음정을 조율하는 12개의 관인 율관(律管·pitch pipe)을 제작했으며 편경과 대고, 편종 등 수많은 아악기를 만들고 개조했다. 이때 그의 절대음감에 대한 에피소드가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온다.
“세종이 일찍이 석경(石磬)을 만들고 박연을 불러 교정하게 했다. 박연이 아뢰기를 어느 음률은 일분(一分) 높고, 어느 음률은 일분 낮다고 했다. 음률이 높다고 한 곳을 보니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세종이 찌꺼기를 떼도록 명하고, 음률이 낮다고 한 곳에 붙였다. 그제야 박연이 이제 음률이 바르게 되었다고 아뢰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신묘(神妙)함에 감탄했다.”

박연은 1431년(세종13년) 정월 하례에 새로 제정된 아악을 초연했고, 이후 동양 최고의 오케스
트라로 꼽히는 ‘종묘제례악’의 기틀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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