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더 이상 동화가 아닌,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소설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더 이상 동화가 아닌,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소설
(20)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08.17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빨간 머리 앤’은 나온 지 100년이 넘었다.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 까? 나도 ‘빨간 머리 앤’이 TV에 나온 애니메이션을 보고 많이 아는 척을 했다. 저자 루시모드 몽고메리(1874~1942)는 캐나다인으로 1908년 원 제목 ‘초록지붕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 작품에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비슷한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났다. 주인공 앤처럼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의 보살핌으로 성장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을 그린 자화상이다.


원제목과 달리 ‘빨간 머리 앤’으로 언제부터 불렀는지 모르지만 주인공의 성격이 많이 그려진 것을 보면 ‘빨간 머리 앤’이 더 어울린다.

나이가 지긋한 독신자 마릴라와 그의 여동생 매슈는 농사일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사내아이를 입양하려 했다. 그러나 착오로 주근깨투성이의 말라빠진 말 많은 수다쟁이 여자아이가 왔다. 인정 많은 매슈는 앤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렸으나 비교적 냉정한 마릴라는 원칙대로 고아원에 되돌려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열병으로 죽고 나흘 뒤에 아버지마저 죽어 이집 저집 옮겨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고아원에서 지냈던 불쌍한 아이였다. 게다가 지독한 일벌레에다 사람을 모질게 부려먹는 사람에게 앤이 다시 갈 것 같아 그냥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마릴라는 앤에게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말한다.

앤 셜리는 한마디로 천방지축이고 기도조차 어떻게 하는지 모를 정도로 가정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매슈와 마릴라도 애를 키운 경험이 전혀 없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 부딪쳐가며 열심히 가르친다. 앤은 잘해주려는 마음만 있으면 항상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누구도 자기를 원하지 않으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자신에 대하여 과장되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럼에도 왜 이아이의 말에 사람들이 빠져드는가? 앤은 삶에 애정이 가득하다. 절망가운데서 희망을 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천성적으로 낙관적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경을 넘는다. 그는 눈부신 공상의 바다로 자주 빠진다. 마릴라는 저 애가 있는 집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매슈는 앤이 조잘거리고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을수록 더 즐거워한다. 앤은 장소나 사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항상 새로운 이름을 짓고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가로수길’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고쳐 부르겠다고 말한다.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행복한 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실망할 것도 없으니까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전 주근깨나 비쩍 마른 건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 건 상상으로 아름답게 꾸미면 되니까요. 하지만 빨간 머리는 어쩔 수가 없어요.”

“아침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상상할 거리도 넘쳐나니까요.”

앤이 마릴라와 매슈의 자상한 보살핌으로 잘 성장했다고 볼 수 있으나 좌충우돌 천방지축 철없는 아이가 차분한 소녀로써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크기까진 여러 사람의 힘이 컸다. 마음의 친구인 다이애나, 경쟁자이면서 속 깊게 배려하는 길버트, 거리낌 없이 툭툭 던져 앤에게 상처를 주지만 애정 깊은 린드 아주머니, 엄격한 성격이나 앤의 상상력에 푹 빠져 진심으로 사랑하는 조세핀 할머니, 바른 종교관과 좋은 말씀으로 감화를 주는 목사부인 앨런, 창의적 수업방식으로 많은 영향을 준 인생 스승 스테이시 선생님 등이다.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불완전한 인간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간다.

한편, 마릴라는 앤이 성장함에 따라 섭섭하면서 서글픈 상실감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스스로 그녀의 품에 안겨 얼굴에 입을 맞춘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아이다. 그 아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이렇게 키 크고 진지한 눈빛을 지닌 열다섯 살 소녀가 사려 깊은 얼굴로 당당하게 조그만 머리를 들고서 있었다.

앤이 자란 에이번리 마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그 마을은 한적한 시골이지만 따뜻하고 밝은 햇살, 비탈진 과수원에 핀 사과 꽃, 아기자기한 오솔 길, 시내 옆 골짜기의 자작나무 숲, 윙윙거리는 수많은 벌들, 아담한 농장들, 이것들 하나하나를 상상하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아름답고 따뜻하게 끝난다. 인간 냄새가 물씬 난다. 매슈가 앤의 대학갈 학비를 저축해 두었던 은행이 파산하자 충격을 받고 죽는다. 그녀는 자신이 받았던 사랑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시력을 잃어가는 마릴라의 곁을 지키며 초록지붕 집에 남기로 한다. 앤이 몹시 싫어한 길버트는 교직 자리를 양보하고 서로 화해한다.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이 소설을 끝내면서 매슈가 한 말이 남는다. 주근깨투성이의 말 많은 아이가 농사일을 도와줄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게 된 후 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마릴라의 불평에 매슈는 말한다. “그 애가 우리에겐 도움이 되지 않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 아이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소설을 읽는 느낌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60이 훌쩍 넘은 나에게 이 소설은 동화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삶에는 슬픔도 있고 슬픔도 있다. 슬픔 속에서 헤맬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지혜와 희망을 주는 마음이 인간답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