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① 입도의 길] 4·3항쟁 흔적 마주하며, 왜 괜한 자괴감이 드는지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① 입도의 길] 4·3항쟁 흔적 마주하며, 왜 괜한 자괴감이 드는지
  • 김형규 자전거 여행가
  • 승인 2018.08.18 13: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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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객터미널에 세워진 ‘제주 4.3 70주년 제주방문의 해’ 홍보물.
목포에서 6시간 동안 물살을 갈라 제주항에 도착해 동호회원들이 배에서 자전거를 끌어내리고 있다.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제주의 속껍질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첫발을 잘못 들이니 갈수록 길이 꼬였다. 조금 전 먹은 해장국의 매콤한 육수가 신물과 함께 역류했다. 제주항의 해발 제로에서 시작된 길은 중산간으로 갈수록 경사가 차츰 가팔라졌다. 도통 4.3평화공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이질 않는다. 올해가 정말 4.3 70주년을 맞은 제주방문의 해가 맞는 것일까. 왜 이렇게 4.3사건의 랜드마크인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안내가 야박한지 은근 부아가 났다.

대전에서부터 꼬박 12시간을 산넘고 물건너 달려왔다. 전날 오후 7시 10여명의 동호인과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목포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그날 밤 12시30분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에 새벽 6시 도착했다. 자전거를 싣고 가기는 선박이 비행기보다 훨씬 수월하다. 하선하자마자 인근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곧바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여객터미널에서 목적지까지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았는데 왠지 자꾸만 옆길로 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말을 알게 된 건 4.3평화공원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마지막 교차로에 도달해서다.

제주항에 새벽 6시에 도착해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아 자전거도로로 달려갔으나 제주공항을 경유하는 바람에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제주공항과 도청인근 도로에선 제주 4.3평화공원 도로 표지판을 찾기 힘들다.

제주항에서 곧장 97번 중산간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직진하다가 명도암교차로에서 왕복 2차선 도로로 우회전하면 쉬웠을 것을 우리는 서쪽 제주국제공항 방향으로 멀찌감치 돌아 제주도청까지 찍고 갔으니 헛수고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속한 동호회는 매년 제주도로 3-4일간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다. 그동안 산지 다운힐에서부터 제주도 도로일주 등 이벤트라이딩을 추진했는데 올해에는 경치가 빼어난 몇몇 오름을 라이딩하고, 개인적으로 4.3유적지를 탐사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가 4.3사건이 발발한 지 70년이고 몇몇 매체에서 다큐와 기획기사로 다루기도 했지만 4.3사건을 되새기거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일부러 입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단체 투어프로그램의 하나로 4.3평화공원이나 몇몇 유적지를 찾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차원에서 사과와 치유 차원의 대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아직도 4.3사건에 대한 이데올로기 논쟁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7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제주토착민들은 당시의 지옥 같은 기억을 말소시키거나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꼭꼭 숨기고 싶은 듯하다.

봉개동과 명도암교차로에서 제주4.3평화공원 안내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봉개동과 명도암교차로에서 제주4.3평화공원 안내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명도암교차로부터는 가파른 업힐이 계속된다.

제주공항을 거쳐 도청을 경유하는 간선도로를 지나는 동안 4.3평화공원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없었다.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가는 길을 물었지만 4.3평화공원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최근 제주도의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제주도민을 상대로 제주 4.3에 대한 인지도 조사를 한 결과, 대상자의 5.1%가 ‘매우 잘 알고 있다’, 28.1%가 ‘잘 알고 있다’, 48.8%가 ‘보통이다’라고 답했으며 ‘잘 모르고 있다’(17.3%), ‘전혀 모른다’(0.7%)도 상당수에 달했다.

명도암교차로에서 약 4㎞를 기어오르면 제주 4.3평화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명도암교차로에서 약 4㎞를 기어오르면 제주 4.3평화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명도암교차로에서 약 4㎞를 기어오르면 제주 4.3평화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도 출생 여부와 성별‧나이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제주 4.3사건은 주목 한번 받지 못한 채 세월의 뒤안길에서 서서히 산화되고 있었다. 덤덤하게 대응하려는 제주도민보다 일개 자전거동호인이 유적지를 들쑤시고 다니며 상처를 덧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명도암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마치 지리산 성삼재를 올라가는 듯한 강력한 업힐을 만난다. 오름을 탄다고 해서 묵직한 산악용 프리자전거를 가져왔더니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약 4㎞ 쯤 올라가니 경찰수련원과 유스호스텔 맞은편에 제주 4.3평화공원이 보였다.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큰 것에 ‘생색내기용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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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2018-08-18 18:27:04
해마다가면서도 이글을읽고서야 되새겨보네요
안타까운일입니다..
늘 좋은글 감사하구요
다음편기대하고있겠습니다~^^

조용만 2018-08-18 17:23:01
제주4.3사건 따라가는
자전차동호회...인상깊네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