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영 화백 특별기고》 현대인과 현대미술 이해하기
《정택영 화백 특별기고》 현대인과 현대미술 이해하기
  • 정문영 기자
  • 승인 2018.08.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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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얼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사의 흐름과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적 현상과 무엇보다도 현대 미술사에 있어 오늘날 현대 소비사회에서의 오브제(Objet) 미술인 팝아트 (Pop Art)를 이해해야만 한다.  

재현 미술은 재현예술(再現藝術: Representational Art) 즉, 사실을 베끼는 미술형식, 눈에 보이는 세계를 묘사하는 예술, 물체의 모양을 재현하는 예술에 반기를 들고 일루젼(Illusion) 미학을 거부하기 시작한 때부터 오브제 미술 형식이 탄생되었다. 일루젼 미학이 대상의 이미지와 형태를 재현한 것에 반하여 오브제 미술은 일상적 생활의 사물들이 미술 작품의 소재로 승화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정택영 서양화가>

큐비즘(Cubism)에서부터 시작한 오브제의 등장과 다다(Dada)의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이란 뜻)를 통해 점차 예술의 범주가 다양하게 급변하게 되었고 오늘날 미술작품의 가치를 논하는데 그 기준점이나 패러다임이 완전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을 일컬어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라고도 부르고 그 포스트모던의 특징은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술의 가치와 미술작품 유통구조에 큰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이른바 위작, 모작, 대작 등의 범죄행위들이 그것이다. 이로 인하여 미술시장이 경색되고 얼어붙음으로써 성실히 작품을 해온 가난한 화가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며 동시에 대중들에게도 미술작품의 가치를 판가름하는데 큰 혼돈을 초래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중들은 미술작품을 향유하기는커녕 넌덜머리를 내고 자칫 미술작품을 기피하는 부정적 경향의 현상을 낳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범법행위를 자행하는 행위의 이면에는 반드시 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즉 돈 될만한 남의 작품을 베껴 유통시키거나 자기의 생각을 남의 손을 빌어 그리게 함으로써 종국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범죄행위로 자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 속에서는 예술이나 미학 등의 거룩한 전문용어를 들먹일 가치가 없는 것이다.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가들은 이렇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미술의 형식 앞에 매우 난처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까지 자신이 믿고 신봉해온 전통적인 미술의 형식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 통념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의 신념대로 미술형식을 고집해나간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만큼이나 어렵고 지난한 현실을 견딜 내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길거리 벽면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그림을 전문용어로 낙서화(Graffiti: 그래피티)라고 불리며 종종 이러한 그림들도 예술작품으로 전시도 되고 팔려 다니기도 한다. ‘싸구려’와 ‘천박’ ‘저질’ ‘촌스러운 것’ ‘2류’의 의미를 내포한 것이 B급 코드의 문화의 특성이다. 이러한 형식의 예술작품들을 이른바 고급 스타일과 문화를 값싸게 모방하는 키치(Kitche)라 부른다. 저급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만 있으면 남의 손을 빌어 작품을 그리게 하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전시를 하며 그 작품들이 팔려 다니고 있는 세상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있고 그 내놓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단순히 상거래 행위이고 큰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이렇게 팔려나가는 작품이 가격이 매겨지고 그 작품에 대해 미술에 관련한 전문인이 평론을 써서 그 판매자의 이름을 예술가 또는 작가로 규정한다면 이는 평론가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한가를 스스로 각성해야만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표현행위가 자유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즉, 돈을 받고 판매한 물건 또는 작품에 대한 작가로서의 연륜, 이를 뒷받침할 명명백백한 작품경력이라 할 크로놀로지(Chronology)를 증빙해야만 한다. 평생 다른 직업에 종사해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을 고용해 그리게 하여 자기 이름으로 내놓고 판매를 한다면 이는 대중들이 볼 때 인정은커녕 예술가란 칭호를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가치와 이를 돈의 액수를 산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 작품을 팔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화가로서의 길에 정진해왔는가, 그 작품들이 나오기까지 처음부터 지속되어온 작품 구상의 변화과정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과정을 증빙할 수 있는 긴 세월 동안의 작품의 밑그림이라 말하는 에스키스(Esquisse), 드로잉(Drawing) 등의 자료(Archive) 들이 명백히 갖춰져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기나긴 인고의 과정 없이 단지 번뜩인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남의 손을 빌어 예술작품을 완성한 것을 받아다가 자기 이름을 써서 전시를 펼친다면 이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중들은 예술의 가치를 깊이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교육자들, 미술비평가들, 미술관이나 화랑 오너들이 정직하고 정확한 현대미술의 정의와 다양성을 깊이 연구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이 절실한 것이다.

대중들은 가격과 가치를 혼동하거나 가격은 아는데 가치를 모르거나 한다. 예술의 가치를 국가의 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지극히 법치적 문제이며 보편적인 세계관과 글로벌 시티즌으로서의 평균적 가치를 벗어날 우려를 스스로 범하게 되는 것이다. 

남의 그림을 모방해 자기 그림의 일부 또는 많은 부분을 자기작품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현대미술용어로 ‘차용’이라 말하고, 또 직접 그리거나 만든 것이 아닌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예술성을 부여한 작품을 오브제 뚜르베(Objets Trouvés) 즉, 발견된 오브제라 부른다. 

여하튼 현대미술의 개념은 난해하다. 

현대미술이 태어난 배경에는 과거 전통적인 고급예술(High Arts)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되었다. 즉, 돈 많고 귀족들만이 향유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들이대며 과거 전통적인 하이-아트를 조롱하고 그 가치를 비웃고 깎아 내리며 희희낙락한 작품의 형태가 바로 현대미술들의 민낯이다.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팝아트의 출현은 역사를 이어오던 전형적인 미술의 형식을 붕괴시켰고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것도 미술인가 할 정도로 돌연변이가 되어 미술계에 등장했다.

팝아트의 선구이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리며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던 사람,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통하는 사람-팝아트의 대명사라 할 앤디 워홀은 슬로바키아(당시 체코)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만화가에 패션디자이너이기도 했고 영화 감독까지 해본 사람이었다. 그가 고급미술을 조롱하는 팝아트 작가라 해서 그 자신도 가난하기는커녕 유명 정치인이나 사회 저명인사들과 늘 사진을 함께 찍은 후 이 사진을 자신의 전시장에 내다 걸면서 유명인사가 스스로 되어버렸다. 그럼으로 해서 그 자신의 예술개념은 팝아트를 지향하고 고급예술을 마음껏 조롱하며 대중들에게 다가갔지만 정작 자신은 부유한 삶을 살았다. "행복한 눈물"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은 만화가였으며 제임스 로젠퀴스트는 말보로 담배 등을 선전하는 광고 간판쟁이 출신이었다. 그들이 현대미술의 한 축을 짜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었다. 

이렇듯, 현대미술이 과거의 전형적인 고급예술을 조롱하고 깎아 내리고 폄하하는 형식의 미술작품을 양산한다 해도 여전히 고급예술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을 가진 자본가들은 변함없이 고가의 고급예술작품들을 계속 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정치적. 제도적 장치는 없다. 따라서 현대미술이 제아무리 궤변을 늘어놓고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 주장을 펼친다 해도 자본가들은 이러한 농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서 작품가치나 작품가를 모를 때는 미술품 중개상이라 불리는 나카마들이나 미술 평론가들, 또는 현행법에 묻기 전에 원숭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얼마나 우문현답인지 시일이 한참 지난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칼럼은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서양화가 정택영 씨가 가수 조영남 씨의 대작 무죄선고가 내려진 후, 18일 본보에 제공한 특별 기고문이다.

그는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 중 2006년 교수직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 프랑스 조형 예술가협회 회원으로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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