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2부 리그에 있다
많은 이들이 2부 리그에 있다
정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 정덕재 시인·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책임작가
  • 승인 2013.08.23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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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밤 나는 우리 집 고딩 녀석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2013/201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봤다. 축구를 좋아하는 고딩은 유럽리그를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 이 녀석이 좋아하는 팀은 리버풀이다. 이날 개막전에서 리버풀은 스토크시티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뒀다. 후반 2분여를 남겨둔 상태에서 페널티킥을 막은 리버풀 골키퍼의 활약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딩 녀석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골키퍼의 경기력을 칭찬했다.

녀석이 리버풀을 좋아하는 이유는 카윗이라는 선수가 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윗은 리버풀에서 여러 시즌을 뛰다가 지금은 터키로 이적한 네덜란드 선수다. 녀석의 표현에 의하면 카윗은 침투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외모도 준수한 편이다.

리버풀의 경기가 끝나고 김보경 선수가 출전한 카디프시티의 역사적인 경기가 열렸다. 이 팀이 1부 리그에 오르기까지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1962년 이후 지난 시즌까지 2부 리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팬이라면 지난 봄 카디프시티의 1부 리그 승격이 확정된 경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날 경기장 모습은 유투브 영상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게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관중석에 앉아있던 팬들이 일제히 운동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50년 넘게 그들을 응집하게 만든 에너지의 표출이었으며 팬과 선수들이 하나 된 감동의 물결이었다.

1부 리그 승격 후, 첫 경기에서 카디프시티는 웨스트햄에 2대 0으로 패했다. 우리집 고딩 녀석은 경기를 보는 내내 느낌이 남다른 눈치였다.

“아빠! 팀이 50년 넘게 1부 리그에 올라오지 못했는데 해체되지 않은 거 보면 대단하지 않아 ?”
“뭐가 대단한데?”

“아니, 우리는 성적이 나쁘면 여기저리서 난리를 피잖아. 구단은 감독부터 쫒아내고 또 팬들은 사정없이 악플을 달고…”

“프리미어는 축구 역사가 깊잖아.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잘하지도 못하는 팀을 50년이 넘도록 응원한다는 건 참 대단한 것 같아”

녀석은 카디프시티의 경기를 마냥 부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사실 성적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프로팀의 생리상 감독과 선수의 운명은 수시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축구선진국인 유럽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50년 넘게 1부 리그에 올라오지 못했어도 팬들은 운동장을 꾸준히 찾았다. 그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을테고, 화를 참지 못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축구를 단순한 순위 싸움이 아니라, 즐기는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1899년 창단한 카디프시티는 100년이 넘도록 우승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래도 팀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오랜 기간 축구를 할 것이다.

우리사회를 가리켜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데 인색하다고 말한다. 패배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자는 말도 자주 한다. 이 말은 요즘의 고딩에게도 해당된다. 시험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부모와 갈등을 겪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패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의 고딩들은 대학을 선택하거나 직업을 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냉소의 시선과 무관심을 거두고 따뜻한 손을 내밀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프리미어리그 소식과 함께 스페인 리그 개막전도 스포츠 뉴스를 장식했다. 뉴스는 메시가 두골을 넣었고 호날두는 골을 뽑지 못했다며 팬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메시와 호날두는 지구상에 단 두 명일 뿐, 모두가 그들처럼 될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땀방울을 쏟아 붓는다.

거기에는 51년 만에 1부 리그에 올라온 무명의 카디프시티선수들도 있다. 이 땅의 많은 고딩에게 메시와 호날두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것 못지않게, 카디프시티의 시련과 도전의 가치도 함께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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