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영 화백 특별기고》 예술의 본질과 현대미술의 얼굴
《정택영 화백 특별기고》 예술의 본질과 현대미술의 얼굴
  • 정문영 기자
  • 승인 2018.09.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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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화가가 그린 작품 '자화상'과 '캠벨 스프 대신 콜라 캔' (1986) (왼쪽부터)>

1. 이 글을 쓰는 목적 

"작품에 대한 평가는 미래에 맡기고 우리는 조용히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반 고흐는 일기에 썼다. 예술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에 마음 먹은 초심 그대로 묵묵히 예술가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이 예술인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평생 예술의 길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걸어왔다. 대개의 모든 예술인들이 그런 자세로 일관된 작품활동을 펼쳐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작품의 대작(代作. 남을 대신해 작품을 만듦. 또는 그런 작품)에 대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불거지고 사법부의 판단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한 판시로 당사자들인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 판시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침묵 속에 고요하기만 하던 미술품 대작에 대한 판결에 급기야 전국 200여 개 단체 미술단체 소속 회원들은 성명을 내고 '이것은 기망행위이자 사기행위'라고 규탄하고, 전국의 모든 미술인들은 모욕감과 분노를 표한다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전국 미술단체장 50여명은 예술회관에서 대한민국 범미술인 대책위원회를 열고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모든 미술단체와 전국 미술인 가족과 더불어 강력히 규탄하며 향후, 대법원의 공정하고 현명한 판결을 바란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필자 역시 평생을 예술가의 길로 일관되게 걸어온 미술인으로, 예술에 대한 본질과 정의를 밝히고 현대미술이 안고 있는 특성을 이해시킴으로써, 논란의 쟁점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2. 예술의 본질과 정의에 대한 고찰

예술의 본질과 정의를 정확히 내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예술은 본질적으로 정신활동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 정신활동의 결과물로서 시각화한 것이 예술작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본질과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예술작품에 대한 대작과 모작에 관련한 논란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 즉 서구에서 말하는 'Art'의 어원적 성찰을 시작으로 이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예술(아트: Art)의 어원은 본래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하고, 아르스는 ‘법칙에 따른 합리적 제작활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기술의 상징적이고 정신적 의미를 함께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본래 예술의 의미는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서구에서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예술이 정립되기 전의 19세게 이전에는 아트를 하나의 기술공예로 보는 시각이었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의 예술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우선 우리말 <예술>이란 말의 뿌리가 한자의 그림글자에서 유래했으므로 이 그림글자가 담고 있는 진의를 살펴봄으로써, 예술이 어떤 의미로 정의되었는지를 파악해보아야만 한다.

예술(藝術)이라는 한자어를 '예(藝)+술(術)'로 분석하여, 각 요소를 그림모양대로 풀어보면 ‘나무심기(藝) 기술(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예(藝)’라는 글자가 금문에서는 나무 심는 모습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렸다. 한 사람이 꿇어 앉아 두 손으로 어린 묘목(철·철)을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다. 간혹 철이 ‘木(나무 ‘목’)’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의미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후 ‘土(흙 ‘토’)’가 더해져 ‘蓺(심을 ‘예’)’가 되었는데, 이는 땅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草木(초목)을 대표하는 ‘艸(풀 ‘초’)’가 더해져 ‘蓺(예)’가 되었고, 다시 구름을 상형한 ‘云(이를 ‘운’)’이 더해져 지금의 ‘藝’로 쓰이게 되었다.

다음 ‘술(術)’이란 그림은 의미부 ‘행(行: 좌와 우)’과 소리부 ‘술(朮: 가운데)’로 이루어진 그림글자이다. ‘행(行)’은 갑골문에서 사거리를 그린 그림이며, 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오간다는 뜻에서 ‘가다’는 의미가 나왔다. 은행(銀行)은 돈이 오가는 곳이니 은행이라고 명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술(朮)’은 갑골문에서 농작물의 이삭을 꺾어 놓은 모습이다. 이후 곡식을 뜻하는 ‘禾(벼 ‘화’)’를 더해져 출로 변했는데, 출은 ‘차조’를 말한다.

네거리를 뜻하는 ‘행(行)’이 ‘술(術)’의 의미부로 기능한 것은 ‘術’이 사람들이 붐비는 길에서 ‘行人(행인)’들을 모아놓고 행하는 ‘借力(차력)’이나 묘기 같은 ‘技術(기술)’을 뜻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술'이란 한자가 약 3천 여년 전에 만들어진 문자이므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역사를 통해 비추어 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의 하나 가운데 예술이란 것이 들어있음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藝)’라는 언어 속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과실수나 농작물의 묘목을 인간 거주지로 옮겨 심는 기술에서부터 출발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고, ‘예술(藝術)’은 그 시작부터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연 상태의 ‘粗野(조야)’함에서 벗어나 자연을 인간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기술을 바로 ‘예술(藝術)’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고찰해본 예술이라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기술이란 요소가 수반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이 단지 아이디어만 가지고 예술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가시적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 즉 에스키스(Esquisse)나 드로잉(Drawing), 뎃생(Dessin) 능력을 연마하고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정택영 서양화가>

3. 현대미술의 출현과 그 배경

현대미술(現代美術)은 대략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을 의미한다. 근대미술 뒤의 미술을 의미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한 편이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인상주의의 등장부터 꼽는 연구자들이 많다. 현대미술 중에서도 1970년대 이후의 미술은 동시대미술로 구분한다.

모더니즘 그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을 고비로 전후 미술은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층 더 과격한 미학적인 모험과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그 가열된 소용돌이는 우선은 앵포르멜(Informel) 미술과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의 등장으로 전쟁 이전의 고전적 추상미학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비롯되어, 연이어 ‘상극(相克)’과 ‘초극(超克)’의 눈부신 변천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전후의 동향은 전전의 '이즘(Ism)' 중심의 미술 운동과 달리 '아트(Art)'의 명칭을 앞세우고 있다. 이를테면 팝 아트, 옵 아트를 필두로 하여 키네틱 아트와 라이트 아트, 또는 정크 아트, 그리고 오늘날의 개념 미술(Conceptual Art)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전쟁(1945년 이전) 전후(1945년 이후) 미술에 대해 각기 그것이 '이즘'과 '아트'로 묶인다고 비친 적이 있으나, 실은 이 양자간의 예술 사이에는 보다 근본적인 미학적 이념의 차이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전의 미술, 말을 바꾸어 20세기 전반기의 미술은 어디까지나 ‘조형(造形)’의 문제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추구로 일관되고 있는 반면, 전후의 미술은 이 조형이라는 ‘우상(偶像)’마저 거부하고 창조 또는 그 행위 자체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보다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조형의 문제를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집약한 것이 바로 추상미술이라고 하는 국제적인 표현 형태요, 또 한편으로는 창조행위의 의미와 맞붙은 궁극적인 미술 형태로서 이른바 '오브제 미술'을 거쳐 오늘의 컨셉츄얼 아트가 등장한 것으로 일단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자체가 그러하듯, 컨셉츄얼 아트 곧 개념미술은 글자 그대로 개념, 컨셉트(Concept)가 하나의 아이디어에 의해 미술형태로 자리잡은 한 장르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포스트 모던 운동이 일어나면서 미술과 예술의 의미와 형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달리 급격한 변모를 가져오면서 미술작품의 개념과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에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양상을 띠게 되면서 미술계의 혼돈을 초래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현대미술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좀 지나친 궤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이디어란 비단 예술계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과학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아이디어에 의해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고 특허를 얻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이라는 현대사회의 특성이 빚어낸 생산방법이 미술작품에까지 차용되고 응용되는 풍토 속에서 빚어진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4. 아이디어와 현대미술 

아이디어라는 사전적 의미는 ‘생각․관념’ 또는 ‘인식․이해․견해’ 등과 함께 ‘단순히 떠오르는 생각’ 또는 ‘상상’으로 정리되어 있다. 또 관용적으로 ‘착상’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아이디어는 계획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된 생각이라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재치’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이디어라는 단어와 ‘반짝이는 전구’를 결부시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바탕으로 발명의 세계에서 아이디어가 가지는 의미를 정리해 보자.

‘모든 문제의 해결 방안’과 ‘행복의 세계로 가는 만능열쇠’ 등 수 많은 의미를 달 수 있겠지만 ‘인간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해답’이라고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이디어란 인간이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한 ‘정신 활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모두를 종합할 때, 우리는 인간이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제 해결책으로 아이디어를 활용해 왔고,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진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과학과 산업분야에서 아이디어가 좋으면 그것에 법적으로 공인을 해주고 특허권을 내줌으로써 타인이 이를 모방하거나 모조하는 일을 법적으로 원천봉쇄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제아무리 좋아도 이를 실제 제품으로 실현시키지 못하면 다만 상상에 불과한 것이 아이디어이다. 

한편 현대미술에 있어서 아이디어만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가 다변화될수록 복제와 모조의 변종 행태들이 성행하기 때문에, 이에 비례하여 법으로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기제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조품이나 위작, 또는 대작 행위들이 법적 제재를 피해갈 수 없는 법적인 판단과 해석은 더욱 엄격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산업과 과학분야에서 뛰어난 아이디어를 창안해낸 사람에게 특허권을 부여하듯 예술작품에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에게도 특허권을 부여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야만 그 아이디어를 창안해낸 사람이 독창성을 인정받고 타인의 모방이나 모조, 위작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인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유사하나, 단 하나 다른 점은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술에는 반드시 그 작가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예술적 흔적을 지녀야만 한다는데 그 대별성이 있는 것이다. 서론에서 밝힌 대로, 예술은 정신적 활동의 소산이며 예술가는 도덕과 윤리적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 순수성과 정직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연마해온 개성과 독창적 기법을 지니고 있을 때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그 아이디어도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위 칼럼은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서양화가 정택영 씨가 9일 본보에 제공한 특별 기고문이다.

그는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 중 2006년 교수직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 프랑스 조형 예술가협회 회원으로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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