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시 읽는 아침 - 박지웅 作 '배롱도'

2014-03-30     김영수

이 공중에서 저 공중으로 원반처럼 날아가는 새소리

배롱나무 연못에 댓잎처럼 지는 삼월 우리는 목탄 같은 손가락으로 시(詩)를 쓰네 나무비녀 곱게 지른 연못, 그 옷고름 푸는 바람이 물뱀처럼 지나가는 연못 너는 무슨 죄로 병(病)처 럼 까만 손가락을 얻었나 견디지 못한 손가락 하나 못에 지네 누가 가슴 하나 벼루처럼 놓치고 배롱꽃 같은 붉은 숨을 토했나 그때, 우리들의 얼굴 첨벙첨벙 짚으며 달아나던 놀란 배롱나무 물위에 떠다니는 헝겊 같은 공중들

다시, 은전(銀錢)처럼 쏟아지는 하늘

춘심(春心)을 흔들어 놓는 것이 어디 배롱도 뿐이랴.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랑대는 바람과, 속으로는 애타게 기다리면서 겉으론 태연한척 했던 나무들, 모른 척 하면서 겨우내 어슬렁거리던 동박새며, 높다란 가지에서 둥지 트고 망을 보던 까치들과, 굳게 다쳐있던 창밖으로 다소곳이 얼굴을 내밀며 굳이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고 애써 탓해서 무엇 하랴.

아무리 난청(難聽)이라도 정령들의 속삭임을 듣지 못하겠는가? 아무리 색맹(色盲)이라도 푸름을 못 보겠는가? 아무리 굳어졌다 해도 따스함을 느끼지 못 하겠는가? 누가 방심해서 흔들리고 있다하는가? 누가 그렇게 피었다 속절없이 진다고 꽃을 탓하려 하는가? 누가 세월에 아쉽게 밀려간다고 거역하려는가?

앞 집 처마에 달린 풍경소리가 허락 없이 담을 넘어와 창가를 두드리네. 춘삼월 깊은 어느 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