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일제 침략·한국전쟁 참상 고스란히

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⑩ 알뜨르 비행장

2019-03-05     김형규 자전거 여행가
알뜨르비행장에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제주도 서남단에 자리잡은 모슬포는 싱싱한 해산물을 즐기려는 식객들로 붐비는 항구다. 사시사철 활기가 넘치는 이 일대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에는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참극의 현장이었다.

서귀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모슬포 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주도 방언 내음이 물씬 풍기는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이 나온다. 옛주소로는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이며 도로명주소는 비행장이 있었다는 의미로 ‘비행로 ○○번지’로 쓴다. 섯알오름은 많은 양민이 학살당한 현장이고 알뜨르비행장 주변은 일제의 전투기인 제로센을 보호하기 위한 격납고와 지하벙커, 동굴진지, 고사포진지가 포진해 있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부터 10년간 이곳 너른 들판에 제주도민을 동원해 건설한 군사시설이다. 활주로는 남북으로 바다와 맞닿아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700㎞ 떨어진 중국 난징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 곳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오무라해군 항공대의 전투기가 알뜨르에서 출격했다. 1938년 일제가 상하이를 점령하자 오무라해군 항공대는 중국으로 옮기고 알뜨르는 항공연습장 기능을 했다. 알뜨르는 아래에 있는 너른 들판이란 뜻으로 일제의 제로센비행기를 숨겼던 격납고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일제는 패전이 짙어지던 1944년 미국의 파상공세에 자살특공대로 맞서는 가미카제전투기를 은닉하기 위해 모두 38개의 격납고를 지었다. 이 가운데 20개가 아직까지 온전히 남아있고 10개가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모슬포는 일제 때 항구가 개발되고 군부대와 면사무소·지서·소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대정면의 중심지가 됐다. 해방 이후에도 자연스레 이곳은 토벌대의 주요 주둔지가 됐다. 1948년 3월 14일 대정중학생 양은하가 모슬포지서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게 되자 민심이 술렁였다. 더욱이 대정중학교 교사 이승진이 ‘김달삼’이란 가명으로 무장대 총책이 되자 이 지역민들은 토벌대의 주요 감시대상이 됐다.

토벌전이 격화되면서 1948년 11월 6일 9연대에 끌려가 고문 받던 대정면사무소 직원과 청년, 지역주민 16명이 동일 2리 천미동 입구 밭에서, 12월 13일에는 48명이 이교동 향사 앞 밭에서 각각 공개총살됐다. 1949년 1월 10일에는 주민들 중 경찰을 돕던 특공대원 11명이 모슬봉 기슭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송악산 섯알오름 옛 탄약고터는 6·25발발 직후 한림·안덕·대정면 예비검속자들이 총살·암매장당한 곳이다. 일본군은 야트막한 섯알오름의 내부를 전부 파내 탄약고로 사용했고 탄약고 위쪽 오름 정상에 두 개의 포진지를 만들었다. 이 탄약고는 일제가 패망한 후 미군에 의해 폭파됐다. 이 때 오름의 절반이 함몰되면서 큰 구덩이가 생겼다. 구덩이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 된 주민들의 학살장이 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지구 계엄사령부는 820여 명의 주민을 검속했다.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면 등지에서도 374명이 붙잡혔다. 이들 중 132명이 대정면 상모리 절간고구마 창고에 수감됐다가 1950년 8월 20일 새벽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총살됐다. 한림지서에 수감되었던 63명도 새벽 2시경 집단 처형됐다. 희생자들은 한림읍, 대정읍, 한경면, 안덕면에 거주하던 농민, 마을유지, 교육자, 공무원, 우익단체장, 학생들이었다.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유족들은 시신수습을 위해 당국에 허가를 요청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 1956년 3월 군부대 확장공사 당시 일부 유해가 드러나면서 한림지역 63구의 시신이 유족들에 의해 수습돼 한림읍 갯거리오름의 만벵디공동장지에 묻혔다.

모슬포지역 희생자 132구의 유해는 1956년 5월 시신수습 허가를 받아 사계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다크투어에
알뜨르비행장

신원을 알길 없는 유해는 공동무덤에 안치됐다. 공동장지에는 ‘조상은 일 백이 넘되 자손은 하나이니 자손 한 사람이 일 백 할아버지를 모두 내 할아버지 모시듯 하라’는 의미로 ‘百祖一孫之地’라는 비석을 세웠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2005년 4·3중요 유적지로 지정돼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국비로 학살터를 매입, 추모비와 제단이 건립됐고 추모정, 학살터 재현, 진입로,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2008년부터 백조일손 유족회와 만벵디 유족회가 공동으로 섯알오름 희생자 위령제단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