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풍 링링이 할퀸 상처… 충남 과수원농가 ‘낙과’ 초토화

천안 배·복숭아 밭, 예산 사과 과수원 가보니… 많게는 80% 이상 피해

2019-09-07     채원상 기자
초토화된

[굿모닝충청 채원상 이종현 기자] 7일 늦은 오후 찾은 충남의 과수농가,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제13호 태풍 '링링'의 기세는 잦아들었지만, 링링이 남기고 간 상처는 치유가 힘들어보일 만큼 깊었다.

가을 결실을 앞둔 탐스런 과일은 속절 없이 떨어져 나뒹굴었으며, 낙과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농부의 마음은 자식 잃은 슬픔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태풍에 배가 하도 많이 떨어져서 밭에 나가보기가 두려워요”

이날 오후 찾아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양당리 이태성(55) 씨 배밭.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봉지에 쌓여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배 10개 중 8개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꺾어진 나무가지와 찢어져 흩날리는 배 봉지가 배나무 밭의 처참하고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가까스로 바람을 견디며, 생존한 배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안쓰러움이 엿보일 정도로 태풍이 남긴 상처는 아프게 느껴졌다. 

강풍에

이른 추석탓에 20일 정도는 나무에 더 매달려 있어야 상품성이 있지만 태풍 링링이 몰고 온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이 씨는 "땀 흘려 키운 배가 강풍에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어졌다"며 "태풍이 온다고 아직 익지도 않은 배를 미리 딸 수도 없고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80% 가까이 떨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배나무 밑에는 봉지가 씌워진 배 3000여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강풍에

인근 복숭아 밭과 사과밭도 피해는 마찬가지다.

수십 그루의 복숭아 나무 가지가 강풍에 부러지고 아직 수확하지 못한 복숭아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복숭아와 사과밭 주인인 A 씨는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추석을 즐겁게 보내기는 틀렸다"며 "방풍망도 치고, 지지대도 설치했지만, 인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일 년 내내 지은 농사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충남 예산 사과밭도 태풍 ‘링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가면 한 과수원에는 강풍을 이기지 못한 사과가 바닥을 뒤덮었다.

강풍에

20년 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모(62) 씨는 “올 추석 풍년을 기대했지만, 기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허망하다“는 말만 남기고 힘 없이 떨어진 사과를 주웠다.

주변에 있는 또 다른 과수원 상황도 비슷하다.

익지 않은 사과가 바닥에 나뒹굴고 나뭇가지도 곳곳에 부러져 있었다.

장모(70) 씨는 “한 마디로 망연자실”이라며 “조금만 늦게 태풍이 왔다면 피해가 적었을 텐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예산군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17개 농가(8.4ha)에서 사과 낙과 피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또 ▲사과 도복 3개 농가(2ha) ▲배 낙과 57개 농가(9.4ha) ▲하우스 파손 9개 농가(1.93ha)가 태풍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