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시간’을 ‘국회의 시간’으로 되돌릴 때

분석]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이후 정치권의 과제

2019-09-10     지유석
문재인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뜻은 분명했다. 문 대통령은 9일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고민이 컸을 것이다. 만약 임명을 철회한다면,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검찰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 

시각을 달리해보자. 핵심은 조 장관을 임명했을 때와 임명을 하지 않았을 때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고, 문 대통령은 임명을 택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조 장관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띠었던 지점은 검찰수사를 언급한 대목이었다. 검찰은 당시 후보자였던 조 장관을 상대로 세 번의 압수수색을 벌였고, 조 장관 부인을 전격 기소했다. 

이를 두고 비검찰 출신 법학자의 장관 임명을 막고 검찰개혁 마저 좌초시키려는 검찰의 정치개입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동시에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장관이 제대로 검찰개혁을 이뤄낼 수 있겠냐는 의구심도 일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가족이 수사대상이 되고 일부 기소까지 된 상황에서 장관으로 임명될 경우 엄정한 수사에 장애가 되거나 장관으로서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검찰은 이미 엄정한 수사 의지를 행동을 통해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간다면 그 역시 권력기관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검찰 수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끔 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대해 아무런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박근혜 청와대가 국정원 정치개입을 수사해온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윤석렬 당시 검사 등 수사팀을 공중분해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간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엔 한 없이 무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의 조 장관 수사는 이 같은 비판을 불식시킬 계기나 다름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의 언급은 검찰 수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취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인사권까지 넘본 검찰, 그대로 둬선 안 된다

문재인

그럼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저간의 상황이야 어찌됐든, 검찰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장관인사권에 개입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그간 검찰은 정치가 결정적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등장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2007년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검찰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관련 의혹에 대해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이 같은 결론은 검찰이 BBK 관련 의혹에다 도곡동 땅·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에 시달렸던 이 후보에게 대권가도를 열어준 셈이었다. 삼성 등 재벌이 얽힌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 판단에 따라 여론은 요동쳤다. 

검찰이 어떤 사건을 꺼내느냐에 따라 온 나라가 들썩였고, 이로 인해 이 나라는 '검찰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윤석렬 검찰총장은 원칙주의자란 인상이 강하다. 특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말은 정치검찰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윤 총장이 조 장관을 향해 칼끝을 겨누자 비난 여론이 들끓은 건 바로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끝내 버리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대통령의 의중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대국민담화에서 "저는 저를 보좌하여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 성과를 보여준 조국 장관에게 그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는 발탁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 의지가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장관이 대통령의 기대대로 권력기관, 특히 무소불위의 검찰 조직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 꺼풀 벗겨보면 조 장관과 검찰개혁은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개혁 방안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이 활발히 논의됐다. 

그런데 이 개혁안이 법제화 되려면 국회문턱을 넘어야 한다. 국회가 이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리긴 했지만,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쉽지 않다. 한국당이 조 장관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에 한국당은 즉각 반발했다. 황교안 대표는 1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조 장관 임명에 대해 "야당을 밟고 올라서 독재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면서 "자신과 한 줌 주변 세력을 위해서 자유와 민주, 정의와 공정을 내던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뜻을 같이 하는 야권과 재야시민사회단체, 자유시민들, 이들의 힘을 합쳐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살려내야 한다"며 조국 파면을 위한 연대를 제안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조 장관 임명을 철회하라며 삭발까지 했다. 

조 장관 임명은 검찰개혁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던졌다. 그런데 검찰개혁을 제도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열쇠는 정치권이 쥐고 있다. 이 와중에 야당이 날을 세우고 있으니 조 장관으로서도 난감할 수 밖엔 없다. 

조 장관은 임명 전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입법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 본인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과제를 잘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다행이다. 

이제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다. 부디 국회가 ‘검찰의 시간’을 ‘국회의 시간’으로 되돌리기 바란다. 그게 검찰공화국의 오명을 씻는 첫 단추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