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 수습안, 사문화 수순 밟나?

-. 명성교회, 김삼환·김하나 목사 체제 유지 결의 -. 교단 안팎에선 수습안 철회 목소리 잇달아

2019-10-15     지유석 기자
예장통합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명성교회 세습 수습안이 종이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는 지난 달 26일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열린 104회기 총회에서 2021년 1월 김하나 목사 임명을 뼈대로 하는 명성교회 수습안을 가결했다. 

수습안 가결 직후 이 안이 사실상 세습을 2년 뒤로 유예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을 주도해 온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는 "이 결정으로 김삼환·김하나 목사 부자와 일부 세습지지 교인들이 받는 타격은 하나도 없다. 어차피 2021년이 1월이 되면 김하나 목사는 위임목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명성교회는 수습안마저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명성교회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당회는 9일 김삼환 원로목사와 김하나 목사를 각각 대리당회장과 설교 목사로 임명했다. 

사실상 현 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셈이다. 앞서 명성교회가 속한 서울동남노회(노회장 최관섭 목사)도 4일 유 아무개 목사를 임시당회장으로 보냈다. 

이 같은 조치는 수습안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수습안 2항은 "서울동남노회는 2019년 11월 3일 경에 임시당회장을 파송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3항에선 "명성교회 담임목사 임명은 2021년 1월 1일 이후에 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급기야 예장통합 교단 총회장 김태영 목사와 수습전권위 위원장 채영남 목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 목사와 채 목사는 13일 교단지인 <한국기독공보>에 '십자가 화해의 정신으로 돌아가라'는 제하의 긴급 권고서신을 실었다. 

김 목사와 채 목사는 이 서신에서 명성교회 측에 "총회가 결의한 수습안은 일종의 징계의 성격을 갖고 있다. 2019년 8월 5일 총회재판국의 재심 판결에 따라서 김하나 목사는 위임목사가 취소되고 최소 15개월 이상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명성교회와 동남노회 양측에 "총회의 결의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일을 피하기 바란다. 명성교회나 서울동남노회는 주요사항을 결의하기 이전에 수습전권위원회와 사전에 협의해 의견을 조율하라"고 경고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교단 총회 지도부가 명성교회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명성교회 세습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습안은 논란의 당사자인 명성교회와 '서울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동남노회 비대위) 둘 중 어느 한 쪽도 수용을 거부하면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한계는 수습안 가결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수습안이 세습을 금지한 교단헌법 28조 6항을 우회한, 초법적 타협안이라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다. 수습전권위도 수습안 7항에 "이 수습안은 법을 잠재하고 결정한 것"이라며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교단 안에선 아예 수습안을 철회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88기는 14일 성명을 냈다. 

신대원 88기는 성명에서 "이번 총회가 통과시킨 수습안은 명성교회도 살리고 총회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수습안은 명성교회(정확히는 김삼환 목사 부자)만 살리고 총회와 한국교회를 모두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본 교단이 명성교회 문제를 올바르게 매듭짓는 방법은 한국교회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하는 초법적인 수습안이 아니라 명성교회의 세습을 어떤 방법으로도 불허하고 김하나 목사가 세습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학대학원 87기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104회의 수습안이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목회자의 양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총회 임원회가 이 수습안의 불법성을 조속히 시인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예장통합 교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새문안교회도 당회 차원에서 수습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새문안교회 당회는 13일 "104회 총회는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제안해 의결한 수습안이 초법적이고 절차상 중대한 흠결이 있으므로 신속히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교회는 그러면서 "새로운 수습 방안을 마련하는 일과 이번에 손상된 한국교회의 거룩함과 공의를 회복하는 일에 뜻을 함께 하는 교회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수습안을 두고 잡음이 일자 동남노회 비대위 쪽 관계자는 "첫 단추를 잘 못 꿴데 따른 결과"라면서 명성교회를 겨냥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수습전권위는 17일 이해당사자인 명성교회와 동남노회 비대위 측을 함께 만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수습전권위가 중재에 실패할 경우, 수습안은 사실상 사문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