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9] 600년 넘게 안식을 주는 보령 광성부원군 사우 느티나무

2019-10-25     장찬우 기자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일명 독쟁이 마을이라 불리는 광성부원군 사우 옆에 느티나무가 있다.

광성부원군은 김성우 장군의 고손이 되는 김극성이다.

청라출신으로 우의정까지 오르신 분이다.

그의 신위를 모신 사우는 원래 장산리에 있었다.

이곳에 청천저수지가 생기면서 후손들이 사우와 탑비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금도 청고을이나 이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광산김씨들이 10월에 함께 제를 지낸다고 한다.

탑비가 있는 비각 옆으로 수령이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나무둘레가 5.4m에 이른다.

느티나무는 충정공 김극성을 흠모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또한 신도비가 세워지면서 심겨졌다고 한다.

충정공의 아들이었던 ‘인사(麟士)가 “앞으로도 계속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게 될 터이니 후대에 그늘이라도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하자”라고 말해 심은 느티나무라는 것이다.

또 느티나무 옆길은 예전(1970년대 말까지) 청라나 화성, 옥계 등지에서 걸어서 광천 장으로 가기위해 ‘새재고개’를 거쳐 지나가야 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예로부터 이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땀을 식히며 쉬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동네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왔다.

김극성은 성종 5년(1474년)에 출생 했으며 연산군 4년(1498년)에 별시 문과에 장원해 관직에 들어온 후 수찬 병조 좌랑을 거쳐 중종반정 때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 4등으로 광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중종 35년(1540년) 사후 충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느티나무가 서 있는 땅은 충정공 김극성의 공을 높이 산 중종 임금이 하사한 땅으로 알려졌다

마을 지명이 ‘산직촌’이 된 것도 사람들이 대대로 충정공과 그 후대의 산소를 관리하며 살았던 동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