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81] 변란에 우는 서천 비인면 팽나무 전설을 따라서

2020-08-20     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사진 채원상 기자, 글 윤현주 작가] 서천군 비인면 다사리에는 서천 바다를 300년 넘게 지킨 팽나무가 있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배가 돌아오던 날에도, 휘몰아치던 태풍에 온 마을이 마음 졸이던 날에도 팽나무는 그 자리에서 바다를,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굽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지긋한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던 팽나무는 흉흉한 일이 생길 때면 설움 가득하게 울었다.

변란에 우는 팽나무,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서천의 보호수다.

팽나무가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봉기하기 며칠 전부터 팽나무는 구슬프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서럽던지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이 나라에 어떤 우환이 생겨나려고 이러나, 두려움마저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남쪽에서 동학이 봉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짐을 싸서 공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함께 싸웠다.

조선 말 한일합방이 이뤄지기 전에도, 6·25전쟁이 발발하기 며칠 전에도 팽나무는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다.

팽나무의 울음소리는 마치 ‘징’을 치는 소리 같았는데 기쁨을 전하는 소리와 슬픔을 전하는 소리가 극명하게 달랐다고 한다.

기쁨을 알리는 소리는 크고 우렁찼지만, 비극을 알리는 소리는 구슬프게 더욱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다사리 마을 사람들을 변란에 우는 나무를 수호신처럼 모시며 제사를 지내 주었다.

칠석날이면 동네 아낙들이 모여 더욱 성대히 제사를 지냈다.

그들이 치성을 올리며 무엇을 빌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그렇게 ‘관계’를 맺었고 이후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관계 맺음은 사람과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팽나무가 어떤 이유로 울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팽나무의 울음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함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팽나무가 더 이상 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