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세상읽기] 짓고 또 짓는 ‘문화시설’, 혈세 줄줄 

문예회관 옆 예술의전당, 충남도‧서산시 1000억 원대 공연장 추진  지역문화진흥 문화향유 외피 쓴 채 단체장 이름 새기기용으로 전락

2020-10-11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변변한 공연장 하나 없었던 시절, 다른 학교 강당에서 이제 막 세계적인 성악가 대열에 합류하는 라이징 스타의 노래를 직접 들었다. 오페라를 처음 본 것도 역시 학교 강당에서였다. 

국내 최대 공모전으로 훗날 대한민국 화단을 빛낼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젊은 시절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본 것도 학교 실내체육관이었다. 

학교 강당 ‧ 실내체육관에서 세계적인 성악가, 오페라를 만나다

지금은 사라진 대전 최초의 공공 공연장과 전시장인 시민회관이 생기기 전, 중‧고등학교 강당과 실내체육관은 공연장과 전시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종종 영화관도 공연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음향, 조명, 방음시설이 제대로 구비됐을리 만무했다. 그랜드피아노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학교 강당과 체육관에서 체험한 문화예술 세례의 첫 기억은 꽤나 강렬했다.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 것은 눈을 휘둥그렇게 하는 웅장하고 독특한 건물 외관, 첨단의 시설이 아니었다. 음악,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시절의 열악한 문화적 환경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최근 우후죽순 난립하는 중소도시들의 문화기반시설들을 보면 이건 아니지 싶다. 오해는 마시라. 작은 도시들이라고 해서 질 높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대전세종대성고

감동은 웅장한 건물 첨단 시설 아닌 음악과 그림 자체만으로 충분 

지역문화진흥과 주민들의 문화 향수권 진작이라는 외피를 쓴 채 합리적 판단 없이 단체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붓는 선심성 전시행정이 타당한지를 묻는 것이다. 

건물은 번듯하지만 정작 이를 운영할 전문인력과 사업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연장이 아닌 교육, 강의 등을 하는 강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시설 가동률도 낮다. 박물관,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변변치 않은 전시에 건물만 덩그마니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충남도와 서산시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예술의전당을 추진한다. 공교롭게도 시기가 겹쳐 동시에 추진하게 되는 모양새다. 두 곳 모두 예산 규모가 1000억 원대에 이른다. 문화공간이 확대되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재정 여건이 충분하다면 모든 지자체들이 빼어난 시설을 갖추는 것이 무엇이 문제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붓다 
 
인구 150만 명의 대전예술의전당 대공연장인 아트홀의 객석은 1500여 석이다. 자체 팬을 확보하고 있는 시립 예술단 공연을 제외하고는 1500석이 꽉 차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다. 인구 10만~20만 명의 중소도시에서 1000석이 넘는 공연장을 조성할 경우 1년에 몇 번이나 유료관객으로 만석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1지자체 1문화회관 원칙에 따라 충남도내 15개 시‧군에 엇비슷한 규모의 문화회관 혹은 예술회관이라는 이름의 공연시설이 들어서 있다. 물론 대규모화되고 첨단 시설을 갖춘 전문 공연장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의 추세로 보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열악한 재정과 한정된 예산으로 기존 시설을 놔두고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짓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 

내포신도시 도청사 옆에는 이미 722석 규모의 문예회관이 갖춰진 상태다. 인근 도시인 천안에는 1600석 규모의 천안예술의전당이 운영 중에 있다. 미술관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또 짓겠다는 것이다.

일단 짓고 보자, 콘텐츠 없어 ‘문화토건공화국’이라는 비아냥까지

‘일단 짓고 보자’며 짓고 또 짓다보니 ‘문화토건공화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공연 내용만 좋다면 조금 부족한 음향 조명이 뭐가 대수랴. 하드웨어에 투자하기 보다는 있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 유수의 공연단을 수시로 초청해 지역민들에게 격조 높은 문화예술을 제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폼나는 문화시설 조성이 공적비 세우듯 시장 군수의 이름을 새겨넣는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시설 조성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기왕에 있는 문화공간 활성화가 더 급선무다. 

도내 인구를 다 합해도 210만 명 조금 넘는 충남도다. 30분 내지 1시간 이내면 이웃 도시에 접근할 수 있다. 몇 개 권역으로 묶어 시설을 공유하는 것은 왜 가능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3~4개 시군이 공동으로 공연장 미술관 체육시설 컨벤션센터 등을 만들어 공동으로 활용하면 출혈 경쟁도 피하고 예산도 절약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3~4개 시군 권역별로 묶어 문화기반시설 조성하면 왜 안되는지

거대한 규모로 세워진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콘텐츠에 대한 고민없이 일단 짓고 보자며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예산낭비를 넘어 주민 기망 행위나 다름없다. 더구나 지방 소멸론이 나오고 고령화 인구가 느는 등 문화 향유층도 줄어들고 있다. 

무리하게 혈세를 투입한 첨단 문화시설이 예상보다 빨리 잡초만 무성한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