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23] 어느덧, 봄이다…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팽나무

2023-03-14     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미간에 내 천(川)자 깊이 새긴 갑순 할매는

바람에 훈기(薰氣)가 묻어나기 시작하면

팽나무 앞을 서성였다

느티나무 수피 같은 손으로 봄 햇살을 걷어내고

팽나무꽃이 어디쯤 피어날까,

흐릿한 눈으로 팽나무를 더듬었다

 

갑순아, 저기 팽나무 보여?

팽나무꽃이 윗가지에 피믄

위 논에 모를 심고

아래 가지에 꽃이 피믄

아래 논부터 모를 심는겨

암만 바빠도 허리 쭉 펴고 팽나무를 살펴야 혀

 

아홉 살 갑순이가

열여덟 갈산댁이 되었을 때도

칠순을 훌쩍 넘겨

지팡이에 삶을 기댄 채 살아가는 순간에도

팽나무에 새잎이 돋아날 때면

갑순이는 허리는 팽나무 줄기처럼 꼿꼿이 펴쳤다

팽나무 잎을 파고드는 햇살이

솜털 가득한 뽀얀 얼굴을 지나

깊은 주름을 파고들 수 있게-

스쳐 지나면 잎인지, 꽃인지 통 모를

작고 소박한 팽나무꽃을 찾으려

깊은숨을 몰아쉬며

찬찬히 팽나무를 되짚는다

 

어느덧, 봄이다.

 

320년이 넘는 시간 마을의 당산목으로 살아온 탕정면 갈산리 팽나무에는 농사에 관한 전통이 있다.

팽나무꽃이 윗가지부터 피면 마을 위쪽 논부터 모내기를 시작하고, 아래 가지부터 꽃이 피면 아래 논부터 모내기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이 전통에 어떤 과학적 논리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허리 펼 새 없는 농번기에 팽나무꽃을 핑계로 잠시라도 팽나무의 초록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여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227 팽나무 321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