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주먹이 운다면 어찌해야 하나

2016-04-05     이규식

주먹이 운다면 어찌해야 하나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다가오지 마라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수분과 기름기가 엉겨붙어
숨을 쉬는 사람이다
순하디 순한 녹말덩어리가
파랗게 살아나서
독을 품고 살아나서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모름지기 운칠기삼이다.
(…)
나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하는 사람이다
감자전을 부쳐 먹고
감자탕을 끓여 먹는 사람이다
순하디 순한 감자만 골라서
갈아서 으깨서 먹는 사람이다
(…)
삶은 감자처럼 숟가락으로도
으깨지는 사람이다
어른 주먹만한 감자가
어른 주먹이 우는 것처럼

- 박순원, ‘주먹이 운다’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2005년 등단 이후 독특한 시세계를 일구어온 박순원 시인은 이즈음 급속히 확산되는 분노조절 장애를 오래전에 예견했는지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 ‘주먹이 운다’를 통하여 리듬감있는 시구 속에 인간내면과 감성의 여러 층위를 능란하게 내비친다. 폭언과 폭력, 위해에 이르는 강압적인 반응과 대처가 아니라 짐짓 여유있게 자신을 분노케하는 여러 현상과 인간을 향하여 부드럽지만 노련한 충고와 독백으로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내부에 솟구치는 분노를 다스릴 힘이 생기는지 모른다. 박순원의 여러 개성적인 시에서 마냥 웃음과 유머만을 찾아낸다면 불완전한 시 읽기에 그치고 만다. 거기에 깔려있는 인간 본연의 비애와 연민에 대한 공감 그리고 따뜻하지만 강인한 자기관리의 지혜를 간파하지 못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