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광장] 양날의 칼, 사이버 익명성

2017-04-19     이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굿모닝충청 이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람이 만든 틀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이 공공에 유익하느냐 유해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뿐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익명성도 마찬가지다.

악성댓글은 익명성을 유해한 사례로, 주로 연예인들의 피해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배우 최진실의 죽음을 들 수 있다.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악성댓글이 한 몫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온라인상의 채팅이나 만남 사이트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고 사이버 다중인격자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사이버 다중인격자는 익명성을 빌려 자신의 직업, 나이, 성별, 학력 등을 모두 허위로 꾸미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활동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간의 이러한 익명성은 각종 신조어부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유행까지 주도하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는 ‘일베’라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익명성은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어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부터 사회적 위협에 처한 사람들의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즉 익명성을 무조건 문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미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총기난사사건. 그래서 개인이 총기를 가지는 걸 반대하는 여론이 있다. 그러면 모든 가정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스위스는 어떨까? 거기서 총기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결국 총기 소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떠냐의 문제인 것이다.
인류사에서 오늘날과 같이 누구나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사이버 익명성의 결과물이며 표현의 평등을 구현한 장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에는 인간의 윤리적 적절성이 요구되는 바, 익명성도 마찬가지다. 익명성의 자유로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고통에 빠뜨리는 것은 엄연히 범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익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교육 현장에서도 익명성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익명성이 분노 표출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하는 국가의 발현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