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시간 22년, 그러나 아직도 허기집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 백영애 씨를 만나다

2017-09-04     윤현주 기자
평생 폐지를 모아 번 돈을 장학금으로 내어 놓은 할머니, 아이의 돌잔치 비용을 기부한 부부, 소아암 환자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한 여고생...... 돌아보면 우리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저 속속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모르고 지나칠 뿐이죠. 여기, 또 한 명의 따뜻한 우리 이웃이 있습니다. 무려 22년 간 한결같은 나눔을 실천해온 사람, 천안 성환역 인근에서 ‘이삭토스트’를 운영하는 백영애 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아파봤다고 아픈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1995년 8월 16일, 백영애(63)씨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애 씨의 가정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한 번도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일 겁니다.

“전 단 한 번도 풍족해 본 적이 없었어요. 빠듯하거나 정말 어렵거나 둘 중 하나였죠.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걸 많이 포기하며 살아야 했어요. 갖고 싶은 걸 가지지 못하는 건 일상이었고 공부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했죠. 그렇게 살다보니까 어려운 사람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더라고요.”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 영애 씨였기에 힘든 사람들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저려 왔습니다. 그래서 영애 씨는 199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해외아동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해외아동을 돕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였어요.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 저는 해외에 나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야기 듣기론 해외아동들은 제가 낸 2~3만원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해외아동을 후원하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한 명으로 시작한 해외아동 후원이 어느새 다섯 명이 되었고 후원 금액도 16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사는 게 바빠 아이들을 잊고 지내다가도 한 번씩 아이들에게 편지와 사진이 오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합니다.

“답장을 해주고 싶은데 제가 여유가 별로 없어요. 시간도, 마음도 여유롭지 못해서 답장을 잘 못해요. 그래서 혹시나 내 편지를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하면 미안한 맘이 들죠. 사는 게 왜 이렇게 바쁘고 힘든지 모르겠어요.”
 
 

삶이란 가시덩굴에 피는 꽃
1955년생인 백영애 씨는 집안의 ‘가장’입니다. 치매로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 90세가 넘은 친정 어머니, 그리고 직장에 다녀 바쁜 딸 때문에 맡게 된 6살, 5살, 3살된 손녀까지 영애 씨의 손이 닿아야 할 가족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바쁘고, 아파도 쉴 틈이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듯 내 삶에도 고비가 많았어요. IMF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후원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더라고요. 그래서 후원을 관둘까 잠시 고민도 했어요. 이후에도 어려운 일들이 잊을만 하면 생겨났죠. ‘요즘 살만해’하는 소리를 하는 게 겁이 났다니까요. 그렇게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고 이젠 좀 나아지나 했는데 남편이 치매에 걸렸어요. 그 때 생각하면 어휴…”
영애 씨는 긴 한숨을 쉬고 나서야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치매라는 게 사람 피 말리는 병이에요. 처음 남편이 치매라는 걸 알았을 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치매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겪어보질 못했으니까. 그래서 너무 힘들어 하니까 주변에서 요양병원에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 40년 동안 함께 살았고, 내가 누군지 기억을 하는데 어떻게 요양병원에 보내요? 이것 또한 제 몫으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해요.”

영애 씨는 매일 오전 4시면 일어나 가게에 나옵니다. 그리고 낮 12시까지 일을 하다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아르바이트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남편을 돌보는 것도, 어린이집에 다녀온 세 손녀도 모두 영애 씨가 돌봐야 할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게에 나오면 차라리 한가해요.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남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도 일이고, 청소며 반찬 만드는 일까지 내 몫이잖아요. 그래도 전 지금이 좋아요. 남들이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여유 있게 사니까요. 없어서 빌리러 다니지 않잖아요.”

어려움 속에서도 영애 씨는 그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가진 삶을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다. 아파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짙은 향내와 선명한 빛의 꽃말입니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
인터뷰 말미에 ‘언제까지 후원을 할 건지‘를 물어 봤습니다. 정말 뻔한 질문이지만 반대로 반드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해오던 거니까 계속 해야죠.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퍼뜨리고요. 90세가 넘은 친정어머니와 딸, 손녀들까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후원하고 있어요. 다들 넉넉지 않지만 그래도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되니까요. 사실 생각은 더 많아요. 어려운 아이들도 더 많이 돕고 싶고 미혼모 지원이나 입양, 가정위탁 같은 부분에도 관심이 많아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은 근처 지역아동센터에 한 달에 두 번 토스트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렇듯 나누는 것을 조금 더 늘려가고 싶어요. 전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삶보다 나누며 사는 삶을 동경하거든요.”

영애 씨는 아름답게 늙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대부분 ‘지금’이 아니라 ‘다음’이죠. 다음에 좀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좀 더 월급이 오르면 그때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요.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 답이에요.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고,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도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을 아끼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