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빨래터 여인 유혹하다 혼쭐나는 스님

신윤복 作 표모봉욕(漂母逢辱) 18세기

2018-06-09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절벽 아래 자리한 한적한 빨래터가 두런두런 소란스럽다. 까까머리 스님과 노파가 대거리를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빨래하는 여인은 오불관언이다. 노파는 빨래 방망이로 스님을 당장 후려칠 기세인데 여인은 무심하게 빨래 방망이만 두드리고 있다.

혜원 신윤복(1758-?)의 표모봉욕(漂母逢辱·18세기)이다. 화제를 연결지으면 단박에 이해가 된다. '빨래하는 여인이 욕을 보다'라는 뜻의 이다. 지나가던 젊은 스님이 빨래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걸다가 기겁을 하는 바람에 함께 빨래 온 노파에게 들켜 혼쭐이 나고 있다. 인적 없는 계곡의 빨래터이다 보니 스님이지만 젊은 혈기에 잠시 흑심을 품은 모양이다. 노파의 방망이 세례에 스님은 혼비백산해 장삼과 승건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상황이 험악했음이다. 빨래 방망이를 흔들며 한참 실랑이를 벌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노파의 힘으로는 스님의 완력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힘이 소진된 탓인지 긴장감이 덜하다. 스님의 수작을 말릴 여력이 없는 탓일까. 그 찰나를 놓칠세라 스님의 강한 눈빛은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빨래하는 여인을 향하고 있다. 스님은 여인과 눈 맞춤을 고대하는데 여인은 빨래 방망이만 두드리고 있으니 속이 타는 모양이다. 스님 가슴만 타들어 간다.

여인이 마을에서 떨어진 빨래터에 나온 것으로 보아지체 높은 양반집 아낙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머리 스타일이 낯설다. 장옷과 비슷한 개두(蓋頭)라는 의상이다. 장옷은 탈착이 자유롭지만 개두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거추장스런 개두를 둘둘 말아 머리 위로 올린 모양이다. 문제는 개두를 누가 쓰느냐다. 궁녀나 양반집 부인들이 외출할 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흔히 상을 당한 여인이 외출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스님이 상중인 여인에게 농을 걸다니 망발이 아닐 수 없다. 혜원의 또 다른 그림 '단오풍정'에서는 스님이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더니 이 작품에서는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 스님을 내세운 혜원의 작의가 관음에서 직접행동이라니 그쪽으로의 진일보가 아닐 수 없다. 혜원이 농 짙은 여러 점의 춘화도를 남긴 것도 아마 그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옛그림이라서 다행이지만 미투가 사회적 이슈인 요즘이라면 화면속 스님은 어떤 댓가를 치렀
을가 하는 걱정의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 필자의 생각만이 아닐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